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했을까?
아니면 반대로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견한 것은 아닐까?
석씨와 남씨가 유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이 일을 저질러다면서? 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처음 그 사람을 봤을 때‥‥‥ 어쩌고저쩌고.
뭐 사실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남씨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요?
'그런 실수는 우리 직원들 절반이 한번쯤은 저지르는 것인데?'
자, 이렇게 된다면 제3자인 우리는 처음의 석씨 생각에 동조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가 유씨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을 때에는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높겠습니다만, 단편적인 정황만 가지고 판단을 해야 한다면 객관적이지 못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작가들이 이런 장난을 좀 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씨가 범인이라고 하여 기소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형사 이씨가 증거를 조작한 것이네요. 변호사 정씨는 김씨의 무죄를 믿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변호하여 무죄 평결을 받아냅니다. 그런데 실제로 김씨는 다른 사건의 범인입니다. 재판장에서의 증거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유죄 평결을 내리기에는 부족하지만 분명히 진범입니다. 그래서 이씨가 조작을 한 것. 너무나 잔혹한 사건이기 때문에 처벌해야 하는 게 옳습니다. 하지만 현재 담당하고 있는 사건2에서는 분명 무죄거든요.
그러니 여기서 무죄를 얻어내려고 애쓴 게 보람이 있는 행위였는지 묻는다면 정씨는 정의를 위해 노력했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살짝 이야기를 바꿔서 정씨가 평결이 내리기 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재판정에서 실수 아닌 실수를 해서 유죄를 이끌어낸다면? 이건 정의로운 행동일까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유씨가 변명을 한다면 구경꾼인 박씨, 한씨, 명씨는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또 변명을 하지 않는다면?
미워한다면 변명은 '변명.'으로, 하지 않는다면 '거 봐, 잘못한 게 있으니까 말도 못하잖아.'로 받아들이겠죠. 반대로 아끼고 있다면, '아니라잖아.' 내지 '얼마나 억울하면 말도 못하겠어.'라고 하겠죠.
결국 내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나의 기준에 따라서. '오늘따라 말을 안 들어.'와 '오늘도 말을 안 들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옆의 다른 사람은 '오늘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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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때 어떤 교수님이 자신의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화장실에 갔더니 아래쪽이 훤히 보이도록 되어 있는데 다들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고 있더라!고 말했을 때 영화 <로보캅>에서 그런 장면을 본 게 생각 났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다른 분들은 모르더군요. 영화를 볼 때엔 그 장면에서 관중들이 전부 웃기다는 듯이 와 소리를 냈거든요. 그 전에 본 영화들에서 화장실 장면이 있었는지 기억이 불명확합니다만, 로보캅이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은 분명합니다.
20년쯤 지나서 학생들과 이야기 하다가 그 말을 꺼냈는데, 여전히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더군요. 제가 이야기 하니까 '아, 그런 장면들을 본 것 같아요.' 라는 대답이 몇 명에게서 나왔고, 몇은 아직도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보아도 알기 전에는 본 게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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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면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누군가(꽤 유명한 사람의 일화였습니다.)가 어릴 때의 유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그런 일에서 그 장면은 없었다고 잘라 말합니다. 알고 보니 일하는 대신 놀러 갔던 유모가 사고가 나자 지어낸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지식이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쯤 되면 왜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지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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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적대감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는 무관심이겠지요, 모르는 사람이니. 호감이 있으면 잘잘못을 눈감아주기 십상이고, 적대감이 있다면, 침소봉대하며 헐뜯게 됩니다. 무관심의 대상이라면, 그냥 대화 상대의 분위기에 맞춰 끄덕일 수도 있고.
상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상대의 행동보다는 나의 생각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