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화장지
옛날 일이라는 것은 불확실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게 보통입니다.
오늘 이야기 할 화장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쓰기 전에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사당동으로 이사한 다음(83년 경)에야 화장지를 쓰기 시작했더군요. 묵동에 살 때에는 분명히 종이를 잘라서 비빈 다음 사용했었습니다. 그 땐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직하식)이니까 이런 종이류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당동은 실내에 있는 것이니 그럴 경우 별도의 쓰레기통을 구비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초기의 화장지는 변기를 막는 경우가 잦아서 (부드러우니 둘둘 말아서 두껍게 한 다음 사용하였고, 따라서 막히기 쉬웠습니다.) 별도의 쓰레기통이 필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화장지를 쓴 기억이 있으므로 (비록 증명할 수는 없지만) 80년대 중반 경엔 화장지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 화장지가 국내에서 생산되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대체로 1974년 유한킴벌리에서 <뽀삐>를 출시한 것을 효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10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 집에도 도입되었다는 뜻이겠지요.
화장지가 나오기 전에 주로 썼던 것은 종이입니다. 구하기 쉬운 것들을 사용했지요. 신문도 80년대 이전엔 구하기 힘든 재료였기 때문에 주로 책이 희생양이었습니다. 덕분에 저희 집에는 오래된 책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60년대에 나왔던 계몽사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50권짜리)도 하나하나 해체되어 사라졌습니다. 두어 권은 제가 숨겨 뒀었는데, 군대에 갔다오니 (화장실이 아닌 방법으로) 사라졌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책들은 지금 생각해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추억 속의 물건이 되었습니다만. (인터넷에서 중고로 주로 등장하는 것은 70권짜리 후속작인 것 같습니다.)
화장지는 품질이 아주 다양하지요. 옛날에(그래 봤자 80년대, 90년대) 시골에 가면 쓰면 항문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갈색의 뻣뻣한 화장지를 줬습니다. 집에서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잘살아서 비싼 걸 사다 쓴 것은 아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차를 부릅니다. 그러면 얼마(대략 2-3주 내지 한 달) 후에 트럭(아마도 2.4톤짜리) 한 대에 화장지를 잔뜩 싣고 나타납니다. 이른바 파본이라고 해서 팔지 못하는 화장지입니다. 고급 화장지인 경우 말아놓은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팔지 못하고 뒤로 처분하였나 봅니다. 따라서 시중가의 절반 이하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품질은 괜찮고, (포장 자체가 없어서 기억은 안 나지만) 100미터라면 90미터는 제대로 된 제품이니까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됩니다.
수시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화장지 회사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주동이 되어 한 트럭 분을 모아서 신청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 분은 공짜로 구입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품질의 것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고품질의 것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이여서 애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점차 올라가서 결국 슈퍼에서 사다 쓰는 것으로 바뀌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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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화장지의 경우 미국에 거주하는 분들은 화장실 전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티슈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두루마리가 식탁 위에 있으면 질색을 하더군요. 아무래도 그것도 선입견이지요. 거긴 화장실용은 별도로 생산하였을 텐데, 우리나라에서는 양쪽을 다 고려하는 수밖에 없으니 두 목적에 다 거스르지 않도록 만들었을 것이고 따라서 식탁 위에서 사용해도 됩니다. 음, 논리의 비약인가요?
전, 티슈의 경우 너무 두껍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걸 주저합니다. 게다가 요새는 3겹지가 주류라고 하던데, 감히 상상을 못하겠습니다. 티슈는 그대로 사용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두 장을 분리해서 쓰기도 하거든요. 옛날에 종이를 썼던 경험 때문에 두꺼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나 봅니다. 극복하신 분들이 더 많겠지만요. 티슈는 화장실 휴지가 아니니 여기서 다루면 주제에서 이탈하는 것이라 그만두겠습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에서 화장지를 구입하는 것은 어쩌다 보니 제 몫이 되었습니다. '떨어져 가.' 라고 아내가 말하면 한 묶음을 사는 것이지요. 저는 재촉받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미리 사다 놓게 되는데, 화장지를 자주 가는 것도 귀찮기 때문에 70미터짜리를 선호했습니다. 요즘은 씨가 말랐기 때문에 구하기 힘들더군요. 아직은 남아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티슈뿐만 아니라 두루말이도 3겹지가 대세입니다. 자연히 길이는 짧아져서 30미터가 주이고 50짜리가 그보다는 적게 있습니다. 70짜리는 딱 한 종류만 남은 듯합니다. 최하품으로 취급되는지 제일 싸기도 합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화장실에 휴지 걸이가 하나만 있습니다. 휴지라는 것은 언젠가 끝을 보이기 마련이고, 용도에 맞추어 떨어지면 괜찮지만 부족하면 문제가 됩니다. 또는 다 쓴 다음 채워놓지 않아도 (다음 사람은) 문제이고요. 미리 확인하는 사람보다는 필요할 때에 확인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저는 재촉받는 걸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여보, 화장지 가져와.'가 싫습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 휴지 걸이를 둘 설치했습니다. 같은 제품을 두 개 설치할 수밖에 없었는데, 같은 방향으로 해두었더군요. 오른쪽에서 넣게 되니 오른쪽은 가능하지만 왼쪽 것은 휴지를 넣을 수 없습니다.
분해해서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됩니다. 건축업자는 그냥 설치만 해뒀습니다. 아마도 '무슨 집에서 두 개씩이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요. 두 개가 있으니 일을 본 다음에 휴지 떨어졌으니 갖다 달라는 말은 한 번도 들은 바 없습니다.
다른 말이지만 수건 걸이도 두 개를 걸 수 있는 것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그런 건 없다고 해서, 그리고 두 개를 설치하기엔 공간이 없다고 해서 하나만 설치했습니다. 사이가 나쁘기 때문에 둘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개인 위생에 관련된 것은 분리하는 게 원칙입니다. 피부가 어쩌다 곪았을 경우 반드시 다른 사람은 다른 수건을 써야 합니다. 농가진 같은 게 생기니까요. 이것도 나중에 다른 글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중단합니다.
어떤 소모용품을 선택할 때에는 수요자(사용자)의 의견이 중요하긴 합니다만, 누가 재정을 부담하느냐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애들의 어떤 요구는 '너희가 돈을 벌면 그렇게 하고, 그 때까지는 우리가 결정한다.'고 답을 합니다. 화장지에 대해서는 아직 특별한 요구사항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