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가 근무시간에 묶이면 대한민국 망한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기자간담회
"출연연은 공공기관 이전에 연구기관..특수성 인정해야"

(서울=뉴스1) 남도영 기자 = "한 번 들어오면 말뚝 박고 안나가거나 열심히 안해도 정년까지 있을 수 있다면 연구기관으로선 '악몽' 같은 상황이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14일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52시간 근무제, 블라인드 채용 등 공공기관에 적용되고 있는 인사제도에 대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공공기관임에 앞서 연구기관으로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ST는 국내 25개 과학기술분야 출연연을 육성·지원하고 관리하는 기관이다. 원 이사장은 올해 출연연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연구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제도 개선을 꼽았다.

현재 출연연은 기간제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연내 채용까지 마무리 할 예정이다. 하지만 원 이사장은 이런 정규직 전환으로 자칫 구성원들이 출연연을 '철밥통'으로 여기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원 이사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좋은 점도 있지만 자칫하면 출연연 조직이 관료화 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방지하는 여러 방법을 구상 중으로 젊은 피를 계속 수혈 받기 위해 신진 연구자를 확대하고 포닥(박사후연구원) 제도를 활성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이사장은 주 52시간 근무제 역시 현재 전 출연연이 적용하고 있으나 연구행위 자체를 '시간' 단위로 관리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출연연은 현재 국가보안기술연구소를 제외한 24개 기관이 '유연근로제'를 도입했으며, 이 중 15개 기관이 '재량근로제'를 도입했다. 재량근로제는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직무의 근로자가 노동시간을 재량껏 결정하는 제도로, 그나마 연구기관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게 원 이사장의 생각이다.

원 이사장은 "(주52시간제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나 원칙은 맞지만 연구분야에 관한 한 연구행위 자체에 시간 개념이 들어가면 대한민국은 망한다"며 "행정직은 52시간제를 도입해도 좋지만 연구직은 재량근로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가보안시설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공개채용에서 의도치 않게 중국 국적자를 선발해 논란이 됐던 '블라인드 채용'도 연구현장 현실에 맞춰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다. 연구회는 올해 지원자의 연구 수월성이나 전문성 등을 검증하기 위해 출신학교나 추천서 등을 블라인드에서 예외로 두는 '출연연 맞춤형 블라인드 채용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원 이사장은 "채용이 공평하고 투명하게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연구기관 특성상 다른 공공기관과 똑같이 채용하는 건 맞지 않다"며 "지난 500년 동안 과학기술계에서 새로운 인력을 채용할 때 관례적으로 해온 절차가 있기 때문에 그런 국제 수준에 맞추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없이 구성원들이 혹사당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직장 문화에는 찬성하지만 이것들이 과기계에서 어떤 형태로 실행되는 가에 대한 이슈는 있다"며 "다만 부처와도 협의해야 하고 노동계와도 서로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원 이사장은 출연연의 고질병인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개선하기 위해 '프로젝트' 단위의 과제들을 모아 '프로그램' 단위로 장기 지원하고, 여러 출연연이 참여하는 '융합연구'를 활성화 하기 위한 플랫폼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부설기관으로 운영되는 국가혁융합연구소와 재료연구소의 독립 법인화도 추진한다.

장기적으로 출연금 비중을 전체 출연연 예산의 60%까지 확대하고, 현재 1만5000명 규모인 출연연 인력도 2만5000명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게 원 이사장의 바람이다.

출연연이 풀어야 할 여러 장기 과제들을 남겨둔 채 올해 10월 임기가 끝나는 원 이사장은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원 이사장은 "외적 요소가 많아 마음대로 안되는 부분이 있지만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것"이라며 "전 기관의 우수연구원 정원 통합 관리 등은 임기 내 마무리 하겠다"고 말했다.

hy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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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안에 대해 찬동하는 분도 계실 거고, 아니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원론적으로 보면 옳으신 말씀인데, 출연연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므로 저는 뭐라 할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