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원 내에서 터져나왔다. 지난 1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연 ‘법관의 업무부담 분석과 바람직한 법관 정원에 관한 모색’ 토론회에서다. 법관회의는 전국 법원의 판사 100여명이 참여해 사법정책 등에 관해 대법원장에게 자문하는 기구다. 법관회의가 2018년 상설화된 뒤 공개 토론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판사의 업무부담이 극심한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됐지만 공론장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못했다. 자칫 판사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업무 과중 호소를 젊은 판사들의 지나친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생활의 균형)’ 요구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로하던 판사들이 숨지는 일이 잇달아 발생했다. 업무부담을 판사 개인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토론회에서는 판사의 업무부담이 재판의 질을 떨어트려 공정한 재판 받을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한국의 판사 업무부담이 얼마나 심각한지, 판사 수를 늘린다면 어느 정도 규모에서 늘려야 될지에 관한 논의도 이어졌다. 특히 독일에선 판사의 업무부담을 ‘법관 독립 보장’의 차원에서 다룬다는 점도 소개됐다. 형사재판에서 검찰과 피고인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판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야간·주말근무 시달리다 번아웃되는 판사들

판사의 수는 3214명으로 한다고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에 정해져있다. 하지만 현재 판사 수는 29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정원 대비 충원율이 90%밖에 안 된다. 충원율 100%를 채우지 못하는 현상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졌다. 국내에는 판사의 업무부담을 제대로 측정하고 재판의 신속성과 공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가 많지 않다. 소극적인 법원의 태도, 비용 문제로만 접근하는 국회·기획재정부, 판사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일각의 시선 등이 겹쳐 판사의 업무부담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판사의 업무부담 문제를 연구해온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건 수 대비 판사 수 자체는 2010년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의 신속성과 공정성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판사의 업무부담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그 배경에 있다는 게 김 교수 설명이다. 판사 1명이 법정 근로시간을 뛰어넘는 ‘주당 55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사건이 접수돼 종결될 때까지 판사가 투입하는 평균 시간은 소액 사건의 경우 30분, 단독 사건은 3시간20분, 합의 사건은 7시간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판사가 극단적으로 긴 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사건 1건에 실제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높은 업무부담 수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판사의 업무부담은 판사의 복지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사건이 점차 복잡해지고 모든 것을 법원에서 해결하려는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판사 업무가 가중된 측면도 있다. 그 사이 판사들에게 과로는 일상이 됐다. 홍보람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현직 법관 6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직무수행으로 인해 신체 건강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52%는 ‘직무수행으로 인한 번아웃(정신적·감정적 탈진)을 경험했다’고 했다.

응답자의 48%는 일주일에 평균 52시간 이상을 근무한다고 답했고, 평근 야근 횟수는 일주일에 3회가 26.3%로 가장 많았다. 주 4회 야근을 한다는 답변도 14.6%, 주 5회도 10.5%나 됐다. 주말 근무를 한다는 답변이 59.5%에 육박했다. 월 3회 이상 주말 근무를 한다는 답변이 25%에 달했다. 응답자의 89%가 판사를 증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업무부담 ‘법관 독립’ 차원에서 보는 독일

독일에선 판사의 업무부담을 ‘법관 독립’의 차원에서 다룬다. 독일엔 사법행정권자의 조치가 법관 독립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심리하는 연방직무법원이 있는데 이 연방직무법원은 판사가 자신의 일을 고정된 근무시간 내에, 법원이라는 고정된 근무장소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조치가 법관 독립을 저해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보는 이유에 대해 연방직무법원은 법 발견은 단순한 사무 처리가 아니라 ‘고도의 인격적 통찰 과정’의 결과이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법관에게 ‘시간적 통제’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업무리듬에 맞게 근무시간을 스스로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법관의 물적 독립이 근무시간 형태라는 영역까지 확장되는 것은 법관은 자신의 고유 업무인 법 발견에 있어 외부적 압박으로부터-비록 그것이 단지 분위기적 방식에 의한 것이더라도-최대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본질적 근거다.”(연방직무법원 결정문)

판사가 사건 처리를 얼마나 많이, 신속하게 했는가를 따질 때도 법관 독립의 가치를 염두에 둔다. 연방직무법원은 판사의 업무 지체에 대한 질책과 훈계는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처리될 수 없는 정도의 업무처리량을 요구한다면 법관 독립 침해라고 봤다.

특히 통계상의 평균 처리건수에 미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뤄진 질책·훈계는 법관 독립 침해에 해당한다. 독일 사례를 발표한 하상익 판사는 “법관의 업무부담 문제를 법관 개인의 과로, 소송사건의 적체, 변론기일의 형해화 등 현상적·실무적 차원에서 주로 바라봤던 우리에게 새롭고도 귀중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 판사에게 평정을 매길 때 사건처리율·처리기간·상소율·파기율을 기준으로 삼고, 10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통해 탈락자를 선별한다.

매년 대규모의 전보 인사와 사무분담(재판부 지정) 변경이 이뤄지는 한국과 달리 독일기본법은 ‘법관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 다른 법원으로 전보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속 법원에 오래 근무하고 사무분담도 바뀌지 않는다. 하 판사는 “법관이 자신의 능력과 특성에 따른 개인적 업무리듬에 맞춰 사건을 숙고해 처리할 수 있는 재량과 권한을 보장받지 못한 채 오로지 통계적인 처리건수만을 우선시하는 상황에 내몰릴 경우, 이는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위임된 사법권을 적정하고 형평에 맞게 행사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헌법이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 제대로 견제하려면 법관에게 시간 필요”

토론회에 참여한 김용희 판사는 검찰에 기울어져있던 기존의 형사재판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검찰권을 제대로 견제·통제하려면 구속·압수수색 등 수사단계에서부터 판사가 충실히 내용을 들여다봐야하고, 검찰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이뤄지는 형사재판 시스템을 바꿔야 되는데 판사의 업무부담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공판중심주의가 도입됐지만 법정에서 일일히 증거를 확인하고 공방하는 절차는 많은 경우 생략되고 있다. 판사가 사무실에서 혼자 읽는 수사기록에 의해 재판의 결론이 크게 좌우되고, 업무부담이 심한 상황에서 피고인이 자백을 하면 판사 입장에선 반가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담은 판결을 해달라는 피고인의 요구도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다.

김 판사는 “상당수 법관들은 은연 중에 ‘같은 법조인이고 공무원인 검사가 불순한 의도 없이 한정된 수사인력으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 믿으면서 기본적으로 공소장을 신뢰한다”며 “이런 신뢰를 전제로 재판을 하기 때문에 형사단독 1심이 일주일에 20건 이상을, 항소심이 50건 이상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판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또 “법원이 적극적으로 시민사회와 교류하고 법관들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각종 재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현실은 법관들이 과도한 업무량에 치여 기존에 발간된 재판업무편람조차 꼼꼼하게 보지 못하고 사법연수원 연수에도 적극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새로운 법리와 재판절차 개발은 고사하고, 법관이 사무분담 변경 후 이미 개발된 법리와 매뉴얼들을 익힐 시간조차 부족해 잦은 실수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판사의 업무부담은 사법행정 참여를 저해하기도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이 불거진 후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로 바꾸자는 요구가 많았고, 법관회의도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작 일선 판사들이 재판업무에 치여 사법행정에 관심을 쏟기가 어려운 사정이다. 김 판사는 “대다수의 법관이 업무량에 치여 연구활동에 참여하거나 사법행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렵다”며 “이는 다시 법원행정처 등 소수 관료법관 중심의 권위적 사법행정으로 회귀할 위험을 초래한다”고 했다.

■법조일원화 시대…“법원 매력적 선택지돼야”

판사 증원은 법조일원화 제도 시행과도 얽혀있다. 법조일원화는 갓 법조인이 된 사람을 바로 판사로 임용하는 게 아니라 법조계에서 일정한 기간 경력을 갖춘 사람을 판사로 임용하는 제도다. 다양한 배경과 사회적 경험을 갖춘 사람이 재판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경력기간을 늘려왔다. 2013~2017년엔 3년, 2018~2019년엔 5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는 7년, 내년부터는 10년 이상의 법조경력자만 판사가 된다. 최근 판사 정원이 제대로 충원되지 않는 데에는 법조일원화 체제에서 법원이 판사 임용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법조경력자 입장에서 업무강도가 심하고, 누군가를 심판해야 하는 판사 업무에 대한 부담감 등 때문에 판사 임용을 지원할 요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 내에선 내년부터 판사 임용 전체를 10년 이상 법조경력자로 채우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법을 다시 바꿔야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신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자료에 의하면, 2019년과 지난해 법관 임용 지원자 중 10년 이상의 법조경력을 갖춘 사람은 7~8% 뿐이었다. 김 연구위원은 “법관 증원 논의에서 법조일원화 현실 하에서의 법관 임용 논의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최근 법원이 겪고 있는 법관 임용의 어려움을 타개할 근본적인 해결책은 법원을 보다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민사단독 외에도 가사·행정, 나아가 장기적으로 형사사건까지 원칙적으로 1심 단독심화(판사 1인이 담당하는 방식)를 하는 것이 법조일원화의 취지에도 부합하고, 법관 업무부담의 감소와 법관직 지원율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법관회의는 이번 토론회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사법행정자문회의와 법원행정처, 대한변호사협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등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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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상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더군요. 이 기사에서 보면 인해 영국의 판사수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재판 건수를 찾으려 했는데, 뜻밖에도 Magistrates(시민재판관)이란 직책의 민간인들이 있었습니다. 법원행정처에서 2016년에 발간한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고, 경미한 형사사건의 1심을 처리한다고 되어 있네요. 근 2만에 달합니다. (자료에는 19,338명/2015년 기준) 이러면 도표에 나온 3700이란 판사의 수는 무의미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민사소송이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지금 같은 체제라면, 변호사를 임시 판사로 고용해서 소액 사건만 맡겨도 될 듯하네요.

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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