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법이 바뀌면서 3년마다 재등록하도록 강제되었다. 신고하려면 3년간 24평점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몇 나라에서 면허를 주기적으로 갱신한다고 하여서 도입한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게 번거로울 뿐 별 다른 게 아니다. 기존에는 보수 교육을 받으면 보수교육 주관 기관에서 의사협회로 누가 몇 점을 이수했는지 통보했다. 지금도 그렇다. 이 점수를 점검하면 누가 착실히 보수교육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본인이 의협에 들어와 점수를 확인한 다음 개인 정보와 함께 신고 양식에 맞춰 복잡다단한 단계를 밟아 신고하게 되어 있다.


과거에 전산으로 일괄 조회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10만 명(의사만 따질 경우)에게 손으로 다시 하라는 게 의료인 면허 신고의 실상이다. 간호사나 다른 의료인까지 합한다면 30만 명이 따로 시간을 내서 행정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불편을 끼치지 않고 조회할 수 있는 정보를 30만 명에게 불편을 끼쳐서 조회하는 제도란 말이다.


나의 경우는 매년 2개의 학회에 3박 5일(1박 2일과 2박 3일) 정도 참여해서 취득하는 평점이다. (이번의 평점은 3년간 74점이었다.) 다른 사람은 더 많은 또는 짧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고. 그런데 또 몇 십 분을 더 내서 신고하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난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가 없기 때문에 기나긴 모바일 등록이 아니라 팩스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3개년의 보수교육 확인증을 출력한 다음 신고서와 함께 팩스로 보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웃기는 것은 이 모든 정보가 모두 남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던 것이라는 점이다. 나 혼자만 알던 정보가 아니라 이미 의사협회가 (그리고 어쩌면 보건복지부가) 알고 있는 정보를 내가 열람한 다음 출력해서 다시 보내는 것이다. 왜 컴퓨터가 몇 초면 처리할 수 있는 짓을 몇 십만 명의 사람이 각각 몇 십 분씩 투자해서 일을 해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이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보건복지부도 알고, 심사평가원도 알고, 건강보험공단도 알고, 세무서도 알고, 의사협회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월급도 받고 있고, 일도 하고 있으니까.


학회에 가서 등록하고(학회비를 내고) 참가증을 수령하고, 이런저런 강좌를 들은 것도 학회가 이미 신고한 사항이다.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에게 다시 정서해서 바치는 게 현 제도의 실상이다. 지극히 공무원적인 사고이다. 가만히 앉아서 모든 걸 통제하려는 사고.


현역에서 정상적인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에겐 면제처리를 해도 괜찮다. 살아 있고, 일하고 있으며 보수교육을 받고 있으면 정상으로 분류해서 신고면제처분을 하면 된다. 살아 있는지 불확실하고,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보수도 안 받고 있다면 신고 안할 경우 면허를 정지시키면 될 일 아닌가? 나도 은퇴하면 신고 안할 것이고 그래서 면허가 정지되어도 상관없다. 일을 안하는데 면허가 왜 필요하겠느냔 말이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현 재동록 절차는 괜히 사람에게 행정적인 부역을 지우는 정책에 불과하다. 즉, 성실한 사람만 골탕 먹이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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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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