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눈

사회-생활 2017. 2. 10. 12:47

며칠 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번 겨울에는 길에 눈이 쌓일 정도로 온 적이 없었네.' 하고요. 물론 그 직후 이런 생각을 하면 곧바로 눈이 쏟아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삼일 만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어제 저녁에 퇴근을 하는데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길의 상태를 보니 젖어 있더군요. 그렇다면 지금 오는 눈이 처음이 아니라 이미 오락가락 하던 것이라는 뜻이겠죠.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TV를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건성으로 눈이 오냐고 묻고는 다시 화면에 집중됩니다. 얼마 후 프로그램이 끝나자 밖을 내다보더니 눈이 오네!라는 말을 합니다. 제가 들어갔을 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간접시인입니다.


아무튼 밤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쌓여 있습니다. 아내는 안절부절못하더니 일찍 버스를 타고 간다면서 차를 두고 떠났습니다. 아침도 안 먹고. 저도 오늘은 아이를 데려다 주지 않으니 차를 꼭 가지고 나갈 필요는 없고 해서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닐 때에는 오래된 걸 입는데 걸을 때에는 새 걸 입습니다. 더 따뜻하고, 모자가 바람에 잘 벗겨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강풍 앞에서는 별 수 없어서 가끔 손으로 모자를 잡고 걸어야 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장갑이 없습니다. 아니, 있기는 한데 차 안에 있지요. 용도는 손을 따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더러움을 탈 만한 상황에서 손을 보호하는 것. 야외에선 손 씼는 것도 일이니까 가능하면 더럽히지 않으려는 방법입니다.


몇 년 전 신발이 망가진 다음부터는 운동화를 신고 다닙니다. 요란한 장식이나 무늬를 피하다 보니 어느 이름 없는 회사의 실내골프화입니다. 온통 검은색이고 해서 양복을 입을 때에도 신어도 금방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싸고, 가볍고, (여름엔) 약간 덥지만 (겨울엔) 따뜻해서 일년 내내 신고 다니는데, 두드러진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물에 젖으면 미끄러진다는 것. 건물들은 대체로 타일이나 돌을 바닥에 깔아두는 데 물이 떨어져 있으면 운동화가 스케이트로 바뀝니다. 처음엔 적응하지 못해서 넘어질 뻔했습니다. 이젠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주의를 합니다.


눈 위를 걸을 때에는 얼지 않은 상태에선 좋습니다. 스파이크가 잔뜩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단 눈이 얼면 이 스파이크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운동화는 롤러 스케이트 수준으로 됩니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가끔 경사가 급한 곳이 있습니다. 다른 신발이라면 '너무 보폭을 넓히면 미끄러질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신발은 '가만히 서 있어도 미끌어지겠구나.' 라는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므로 겁이 덜컥 납니다.


가까스로 출근하였습니다. 그다지 늦게 출발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시계를 보았을 때에는 8시 10분 경이었음.) 도착하니 8시 50분이네요. 아무래도 생각보다 늦게 나선 모양입니다. 걷는 데 들어간 시간도 평소보단 길었고.


일단 출근을 하니 퇴근 길이 걱정됩니다. 낮 동안 눈이 다 녹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주도엔 해안 가까이 일주도로라고도 부르는 옛 12번 국도이자 현 1132번 지방도로가 있습니다. 이 길은 유명해서 타지인들도 잘 알지요. 대략 180km 정도 될 겁니다. 몇 개의 횡단 도로가 있어서, 5.16도로라고 부르는 한가운데의 횡단도로랑, 평화,번영로라고 부르는 동서관광도로가 크기에 상관없이 주요한 도로입니다.


그리고 중산간도로라고 부르는 옛 16번 국도이자 현 1136번 지방도로를 기준으로 해서 산이냐 아니냐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길이 우리 집에서 보면 해안쪽에 있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곳은 아직 산이 시작되지 않는 곳인데 1km만 가도 가파라지면서 산이라는 걸 실감하게 하니까 산자락이겠지요. 어쨌든 눈이 내리면 해안쪽보다는 녹는 게 느리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게 싫어서 더 위쪽으로는 가지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눈이 녹지 않으면 설설 기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듯합니다.


과원 한 명이 오늘 서울에서 열리는 워크샵에 간다고 했었는데 무사히 출발했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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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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