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장을 한동안 인영극장으로 알고 지냈다가 어느 날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인영이 아니라 인형 아니냐고 말을 들었습니다. 거길 안 다닌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기 때문에 저야 잘 모르겠기에 얼버무렸던 기억이 납니다.
일생 동안 영화관에 간 횟수를 문득 생각해 보니 얼마 안되네요.
국민학교 가기 전은 기억이 나지 않고, 국민학교 때 서너 번 간 기억이 있고(대표적인 게 봉선방, 십계), 중고등학교 때 두세 번(금발의 나타샤, 학생일 때는 모두 학교에서 단체로 간 것들입니다), 대학생일 때는 한두 번 간 것 같고(엑스칼리버), 군대 제대 후에는 두세 번 간 것 같습니다(라따뚜이). 다 모으면 10번쯤 되겠네요. 두 번의 시기가 여기서 추가되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인턴 때이고 또 하나는 군 복무 첫해입니다. 아, 전공의 1년차 때 의국에서 의국비 아껴서 보러 간 <우먼 인 레드>랑 전문의 시험 준비할 때 기분전환으로 시험 준비 중이던 전공의들이 단체관람한 <사랑과 영혼>이 추가되어야겠습니다.
인형극장은 1987년 부천 성가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갔었습니다. 네다섯 번쯤 간 것 같네요. 인턴이라는 직업은 지금은 모르겠고, 그 때에는 일이 있든 없든 병원 근처에서 살아야 하는 위치입니다. 당시에는 통금이란 게 있어서 12시가 되기 전에 어딘가 들어가야 했으니 집에 갔다왔다 하는 건 쉬는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사치였습니다. 그래서 인턴 일에 적응이 된 다음 시간이 나자 일이 공식적으로 없는 날에 영화관이라는 데를 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부천이니까 먼저 떠오르는 게 부천극장이지만 여긴 재개봉관(내지 재재개봉관)이라서 제외되었습니다. 서울은 멀고 인천이 오히려 가까운 곳이라 알아보니 누군가 인형극장을 이야기 해서 가게 되었죠.
플래툰, 로보캅, 백 투 더 퓨처, 프리데터를 거기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일부는 91년 군 복무 때와 혼동되었을 수도 있음.)
아무튼 심야시간(이라고 해봤자 끝나면 11시 가까이 됩니다. 요즘하곤 개념이 다르죠.) 표를 끊어서 보고 난 다음 부지런히 동인천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면 구로행 막차가 들어옵니다. 부천 역에서 내려서 병원으로 걸어가면 되는 것이지요.
심야시간은 할인이 됩니다. 실제로도 손님이 없어서 (다른 시간대에는 많았는지 제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2층 제일 앞 한가운데에 앉아서 보면 다리도 편하고 소리도 좋습니다. 이층 손님 수는 많을 때에는 3-4명, 적을 때에는 저 혼자입니다. 입체 음향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낀 게 인형극장이었습니다. 플래툰을 볼 때 헬리콥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더니 앞으로 이동해서는 헬기가 화면에 내리더군요. 보통 이런 걸 문화 충격이라고 하지요.
딴 소리지만 <문화 충격>하면 스피커를 마련하여 컴퓨터에서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도 포함됩니다. 97년 경에 샀었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 관련 비용을 관리하던 엑셀 파일을 잃어 버려서 불확실하네요.
다시 돌아가서, 그리고 뜸하다가 군에 간 다음 의무하사와 함께 의정부 극장에 가서 본 게 한두 편 됩니다. 남자들끼리 봐서 그런지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그렇다면 평생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가 어쩌면 20편이 안된다는 것이네요. 조금 더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제 영화 관람사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인천 인형극장입니다.
제가 본 영화 편수는 어림 잡아 6천 편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옛날엔 TV에서 주말이면 영화 네 편을 볼 수 있었습니다. TBS(후에 KBS2)에서 토요일 저녁에 한 편, 일요일 낮에는 EBS에서, 저녁에는 KBS1과 MBC에서 조금 시차를 두고 했으므로 1.7편을 볼 수 있습니다. 매주 4편이니 매년이면 210편입니다. 당시엔 공휴일이면 5-20편 정도 추가해서 볼 수 있었으므로, 꾸준히 본다면 1년에 300편 정도 TV에서 시청 가능했습니다. 한창 봤던 시기 15년이면 4500여 편이죠. 중복을 빼야 하니 조금 줄여야 할 것이고, 또 다 본다는 것도 무리이므로 더 줄입시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유니텔 같은 데서 영화를 받아 보았습니다. 2천 편이 넘을 것 같네요. 그 외에 갖고 있는 DVD가 이젠 수백 개이니, 다 합하면 5천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케이블 TV에서 가끔씩이지만 보게 됩니다. 주말에 아이들이 볼 때 같이 보는 것들입니다.
그러면 의문이 하나 떠오를 것입니다. 오육천 편이나 영화를 보았는데 왜 영화관엔 수십 번밖에 안 갔느냐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눈이 안 좋아져서.>입니다. 영화관에 가서 보는 이유는 <넓은 화면과 음향이 좋으니까.>인데 <넓은 화면>은 잘 안 보이니까 탈락입니다.
두 번째는 <보다가 중지할 수 없어서.>입니다. 다운로드 받았던 것들이나 DVD는 중지했다가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뭔가가 궁금하다면 즉석에서 다시 볼 수도 있고요. 사실 첫 번째 이유보다는 이게 더 절실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느냐가 저에게는 가장 큰 조건입니다.
세 번째는 앞의 두 가지에 비하면 아주 소소한 이유인데, 갈 만한 시기가 되기 전에는 TV로 해결했었고, 갈 만한 때가 되었을 때에는 위의 두 가지 이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는 더 소소한 이유인데, 영화 관람료가 비싼 것 같습니다. 뭐, 이런 저런 할인 받으면 된다고 하는데, 저랑은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더군요. 시도도 안해 봤으니 이런 말 하면 안될 것도 같습니다.
다섯 번째는 정말로 소소한 이유입니다. 여러 사람과 섞여서 보는 게 불편합니다. 어쩌면 2번과 상통하는 것일 겁니다.
본 것 다 기억하느냐는 질문이 있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말씀 드려야겠지요. 하지만 요즘 것 말고 80년 대부터 2000년 대 초까지의 영화 중 상당수는 일부만 보면 즐거리 등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집에서 제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애들이나 아내가 영화를 보는 편인데 제가 영화를 엄청나게 많이 보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끔 저 영화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가서 잠시 보는데 그 시기에 했던 (그리고 제가 봤던) 것들은 상당수가 기억이 납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다음 장면에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것까지는 무리인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다시 보면 그 땐 몰랐던 장면이 새로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책도 마찬가지지만 뭐든지 여러 번 본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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