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음악 시간에 국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저희보다 몇 년 후배들은 조금 접한 모양이더군요. 그래서인지 국악에 대하여 상당히 오랫동안 호감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서양 고전에 대해서도 고1 때 <1812년 서곡>을 음악 선생님이 음악실에 틀어놓고 달아나신 다음에야 감상할 만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 땐 그 곡이 뭔지도 몰랐죠. '무슨 서곡이라고 한다.'만 귀에 들렸거든요. 훗날 다시 들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아무튼 음악은 저랑 상당히 거리가 먼 분야였습니다. 언제더라, 고등학교 때인가 대학교 때 무심코 가요를 듣다가 가요의 가사가 내용이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정도니까요. 그 전엔 그냥 주어진 가사대로만 불렀을 뿐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사에 <내용>이 담겨 있다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좀 황당하신가요?


레지던트 때 시간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음악을 들을 시간 말이지요. 사립대 병원이었기 때문에 8시 출근, 5시 퇴근입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저녁 5시 가까이 되면 병리사들이 퇴근하면서 판독해야 할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교수님들께 확인 받아야 할) 슬라이드를 의국에 쏟아 놓고 갑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직병리 슬라이드 판독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 레지던트들은 (특히 결혼한 경우에는) 후다닥 보고 7시 경에 집에 가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와서 마저 보고 9시 경부터 교수님들과의 대면에 들어가는 게 보통이었고, 남자는 (아, 복수가 아닙니다. 저 혼자이니) 느려서인지 저녁과 밤에 보고 준비를 해 놓으면 오전에 대면하는 것이지요.


당시엔 통행금지가 있었으니 슬라이드가 나오는 날이면 (1년차 땐 3일에 한 번, 2년차와 3년차 땐 이틀에 한 번)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슬라이드를 보고 또 공부했습니다. 집에 가는 걸 포기하니 시간이 많아지더군요. 그래서 라디오를 틀어 놓았습니다. 다들 퇴근한 다음이라 혼자서 의국에 있었으므로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그러다가 KBS 1FM에 채널이 고착되었습니다. 당시엔 하루 종일 하는 게 아니라 1시인가 2시에 끝났습니다. 4시인가 5시에 시작하고요.


그래서 오후 6시쯤에 의국이 완전히 비면 라디오를 틀어 놓고 방송이 종료될 때까지 들었죠. 듣다 보니 국악 프로그램이 두어 번 나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듣기 싫다고 굳이 끄거나 돌릴 필요는 없으니 참고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졌습니다. 이렇게 3년을 보낸 결과 동서양 고전 중에 들을 만한 곡이 꽤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확실히 경험하지 못한 것은 가까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가능하면 많이 가르치려고 하는가 봅니다.


교육학 하는 분들 중 소수인지 다수인지 모르겠으나 효율을 중요시하는 분들이 주장해서 덜 가르치는 것(아, 표면상으로는 단 번에 하나의 주제를 다 가르치면 중복이 줄어들어 시간을 줄이고도 필요한 건 다 가르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으로 요즘은 교육의 방침이 바뀌었는데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정규과정에서) 접할 기회가 없다는 건 애써 외면하시나 봅니다.


그래서 편협했던 저의 음악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달라진 3년이었습니다. 가요 중에는 아무래도 70-80이 가장 많이 들었던 곡들이라서 지금도 흥얼거리는 대상입니다. 우연히 모으게 되면 다시 감상하는 것들도 대부분 그 시대 것들이고.


사람마다 다르기에 개성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어떤 분은 저랑 같은 환경이라면 오히려 싫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많이 우겨 넣은 결과 좋아졌다가 결론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제 경험 영역은 다 투입 시간에 비례해서 뭔가가 쌓였던 것 같습니다. 공부도 이 책 저 책 마구 늘어 놓고 닥치는 대로 보다 보면 어느 날 머리 속에서 저절로 정리가 되어 '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시간이 적게 투입된 분야는 금세 관심에서 벗어났고요.


요즘은 제가 뽑아 놓은 (그리고 수집된) 50여 곡을 돌아가면서 틀어 놓기도 하지만 다시 KBS 1FM을 때때로 듣습니다. 인터넷에서도 된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어서요. 한때는 IT의 선두 유저였는데, 이젠 뒤쪽으로 한참 밀려난 노쇠해 가는 세대여서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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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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