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중학교>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고입연합고사 시험 성적이 180점 대여서 고등학교에 예비 등록을 위해 가니 720명 중 50등 안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정확한 등수는 미공개인 듯했고, 그냥 접수하시는 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평준화된 이후니까 성적도 학교 배정에 관여되었겠지요.


아는 분은 아시다시피 용문고등학교는 성북구 안암동에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느라 찾아보았더니 52년에 강문고등학교로 시작하였고, 66년에 현 재단이 인수하여 70년에 용문고등학교로 개명했습니다. 74년에 이른 바 뺑뺑이, 공식적으로는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학교가 급변하였습니다. 대학교 3년 선배(이자 고등학교 3년 선배)의 전언에 의하면 첫 평준화 학생으로 등교를 하였는데 하교길에 선배들(당시 2, 3학년)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야간이었다고 합니다. 오후 하교 때마다 등교하는 선배들에게 맞는 게 일이었다고 합니다.


등교를 하니 김문희 선생님이 교장으로 계시더군요. 여자입니다. 당시엔 좀 놀라운 점이었는데 좀 지각이 있는 학생들은 금력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전 무슨 소린지 모르고 지내다가 2003년 현대그룹의 정몽헌 씨가 수사중 자살로 처리되면서 신문 기사에 나왔는데 당시 아내였던 현정은 씨가 김문희 씨의 딸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김문희 씨의 간단한 가족력이 나와서 이른 바 떠르르한 집안인 것을 새삼 알게 되었죠.


뭐 여자가 돈으로 교장을 하면 어떻습니까? 학생이야 시설이나 인력 같은 면에서 만족스러우면 그만이지. 언덕 쪽에 큼직한 체육관이 있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1975년에 준공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당시엔 드문 시설이었습니다. 날씨가 나빠도 실내에서 한 곳에 모여 조회를 할 수 있다는 게 생경한 시대였다는 걸 생각해 보십시오. 덕분에 겨울에 추운 체육관에 양말만 신고(바닥 망친다고 신발 못 신게 했습니다.) 서 있으면 엄청나게 시려웠습니다만.


79년도 대학 입시에서 가까이 있는 고려대에 100명쯤 입학했던 기억이 납니다. 연대나 서울대는 적게 들어갔죠. 당시엔 이 세 개 대학이 고등학교 평가의 지표였는데 세 자리 수로 입학시킨 고등학교는 아주 많지는 않았습니다. 80년에 저희가 졸업했을 때에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고려대에 120명쯤 들어갔다는 걸 나중에 얼핏 들은 것도 같네요.


3학년은 제일 깊숙한 곳 별도의 건물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중학교 자리로 표시됩니다. 당시 중학교는 본관의 동쪽을 차지했던 것 같습니다. 같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이 잘 안 납니다. 하지만 본관 동쪽으론 출입을 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중학교가 거기 있었다는 걸 아는 것이겠지요.


체육관 동쪽은 야산이었는데, 훗날 고려대 안암병원이 들어섰습니다. 당시엔 안암로터리로 가다 보면 이과대학만 고대 서남쪽에서 따로 뚝 떨어져 있던 때였습니다. 안암로터리는 상당히 독특한 모양을 갖고 있는데, 지도로 확인해 보시면 무슨 소리인지 아실 겁니다. (다음 지도에선 안암오거리로 표기되네요. 사실상 사거리일 텐데. 아, 동쪽으로 빠지는 길을 포함하면 오거리 맞네요.) 당시엔 북동에서 남서로 빠지는 게 도로이고, 북쪽은 골목 수준, 동쪽으로는 길이 있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불확실합니다. 남쪽으로는 작은 길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훗날 안암 병원에 가면서 얻은 기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학년 때 12반이여서 정문에서 보이는 끝 교실에 있었습니다. 거기만 두 교실이 있어서 11반, 12반이 있었죠. 3층인가 4층이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2층일 수도 있겠죠. 학교 자체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건물은 운동장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 것입니다. 로드뷰로 보니 밖에서는 6층처럼 보이네요. 그렇다면 4층이 맞을 것 같습니다.) 밖이 내다보이는 명당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칠판이 동쪽이고 남쪽은 복도, 서쪽이 길, 북쪽은 주택가였습니다. 두 면이 창으로 된 교실은 거기가 유이했던 것 같네요. (11반 포함)


담임 선생님은 최철호 선생님이셨는데 국어(한문 겸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살아 계시면 80대이실까요? 2000년 8월에 교장으로 퇴임하셨다고 나오네요. 2005년 11월 <교차로>에 기사가 나옵니다. 당시에 67세로 되어 있으니 지금 78세시네요. (아, 2014년에 별세하셨다는 기록을 조금 전에 발견했습니다.)


2학년 때는 백봉기 선생님이 담임이셨고, 3학년 때는 공동 선생님이 담임이셨습니다. 8년쯤 후배가 공동 선생님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대학교 동문회에 나와서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공 선생님하고 최 선생님은 차분한 성격이시고, 백 선생님은 다혈질이셨는데 저는 당시 모범생이였기 때문에 가끔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끔입니다. 당시엔 칭찬이 드물었던 시대이고 제가 특출나지 않아서.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안암로 건너편에 있는 경동고랑 패싸움을 벌인 모양입니다. 좀 한다 하는 애들이 소문을 듣고 우르르 몰려가고 선생님들도 수습하러 가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하나인가 둘인가 떨어져 있어서 충돌이 적었다고 들은 것도 같네요.


버스 토큰 시대가 고등학교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엔 회수권이었죠. 가격 올리는 게 불편해서 다시 회수권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대학생 때 회수권 사러 산업대 입구 정거장 근처를 방문했던 기억이 나서요. 학생증을 안 가져가서 다른 학생에게 부탁해서 겨우 샀었고.


1학년 말에 문학제가 있었는데 누군가가(아마 2학년 선배?) 영화 <대부>를 리뷰하였습니다. 당시엔 도안을 그 사람이 한 줄 알고 (문화) 충격을 받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포스터에 나온 것이더군요. 아무튼 그걸 손으로 다시 모사해낸 것만 해도 보통은 아니었습니다. (72년도 작품이지만 한국에서의 개봉은 77년 5월이라고 나옵니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고 그것만 기억납니다. 역시 시각적 전달이 가장 강렬하고 오래가는 충격을 주는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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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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