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퇴임을 앞둔 사람이니 기득권이란 말은 저에게 해당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의료현장에 오래 있었으니 의료정책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의료계 관계자는 될 것이고요.

냉정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개개인의 특수한 사정은 배제하기로 합니다.

의대 과정은 예과-본과 해서 6년입니다. 요샌 상당수가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어서 인턴-레지던트라는 전공의 과정을 과에 따라 4-5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가 펠로우 과정을 2년 추가하여 수행합니다. 특히 요즘 언론에 거론되는 분야는 여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니까 이 글에서는 여기까지를 일반적인 과정으로 산정하겠습니다.

나이로 계산하자면 만 18세에 대학교에 진학한 경우 만 24세에 대학을 졸업하여 의사 면허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공의 과정과 펠로우까지 계산하면 31세입니다. 18세에 바로 대학에 왔으니 남자라면 군의관으로 만 3년 근무해야 합니다. 마치고 나면 34세네요. 그러니 대략 30년 정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직업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긴 투자기간과   상대적으로 짧은 회수기간을 갖습니다.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내년(2024년)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요즘 세간에 오르내리는 과의 경우 2040년이 되어야 쓸 만한 인력이 보충됩니다. 여자의 경우는 2037년이고요. 즉, 우리가 지금 검토하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16년 (또는 13년) 뒤의 수급입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당신은 이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접근하고 계십니까? 의료계의 의견을 기득권 차원으로 폄하하려는 당신, 위에서 나온 것처럼 지금 50대인 의사들은 당신들이 주장해서 배출될 신규 인력들이 제 기능을 할 즈음에는 모두 퇴직한 다음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있네요. 즉, 이들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환경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정원 확대를 주장하는 자들은 1. 자신들의 인기나 영달을 위해 주절대는 인간이거나, 2. 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따라서 떠드는 머저리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언론의 기사에 달린 것을 보자면, 입학자를 확대하면 배출된 인력이 넘쳐서 지금 회피되고 있는 그쪽으로 갈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의사가 아닌 "당신"은 가지 않을 것이고, 해당자(현재나 미래의 의사)의 대부분이 가지 않으려는 힘든 길을 후대의 누군가를 떠밀어서 가게 하자는 말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비난합니다. 몹쓸 놈! 그런데도 그게 좋은 방법이란 말입니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내로남불을 여기서도 보네요.

사회에서는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직종에 사람을 보내는 방법으로 이런저런 유인책을 둡니다. 떠밀려서 선택하게 하는 것은 최하책이라고 보지요. 준강제 노역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동의하시겠죠? 그렇다면 현재 의료계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안인 수가현실화는 긍정적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교묘하게 특정 병원에 월 3천을 줘도 지원자가 없다는 식의 기사로 호도하는 기사가 꼭 이럴 때 등장합니다. 다행이 일부 기사에서는 이런 곳이 실제로는 그런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거나, 과도한 업무를 강요한다는 것을 보도하기도 하더군요.

한 인간이 어떤 직장을 지원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보수 외에도 고용 안정성, 고향, 취향, 적성, 시간 여유, 취미, 사회 생활, 가족 관계, 문화적인 지원, 정신적인 상황 등등 무수합니다. 대체로 각 개인은 자신에게 이익인 부분과 손해인 부분을 자신의 가치기준에 따라 저울질해서 선택 내지 포기하게 됩니다. 그 많은 조건들 중에서 맞는 사람만이 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관심 밖이 됩니다. 어떤 분야이든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는 사람을 사회에서는 대체로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저도 늙어 병원 신세를 자주 지게 될 사람으로서 그 때 가서 의사가 부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떠밀려서 온 사람이 마지못해 저를 진찰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도 세상을 다 아는 것은 아니며 또 제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이라면 제게 알려 주세요. 의견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비난은 사절합니다.)

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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