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전문대학원

의료 2016. 10. 10. 10:56

의사가 되려면 예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의과대학을 지원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등학교-의과대학(의예과-의학과)-국가고시 후 의사면허 취득-전공의 과정-국가고시 후 전문의자격 취득의 순서를 대체로 밟았습니다. 의사가 되는 건 의과대학을 나와 먼허를 취득하면 끝이지만 대세가 전문의까지 추가로 취득하는 거였으니까요. 만 나이로 계산하고 군대를 가야 하는 남자가 아닌 경우라면 18세 의예과-20세 의학과-24세 인턴-25세 레지던트-28세(대부분은 29세) 전문의 취득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으면 28(29)세 펠로우-30(31)세 조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나이는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고, 대체로는 2년 정도 더 걸리고, 군대를 가야 하는 남자라면 5년이 더 걸립니다.


그러다가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이란 제도가 생겼습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때때로 학사를 마친 사람이 의사가 되기 위해 다시 의과대학(사실은 의학대학원)에 가는 게 나옵니다. 그걸 도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의대 입학 정원의 절반 정도가 의전원으로 바뀐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200명도 안될 겁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려면 1. 고교 졸업 후 의예과 진학, 2. 학사 취득 후 의전원 진학, 3. 고교 졸업 후 의전원의 학석사통합과정 진학, 4. 학사 취득 후 의전원의 석박사 통합과정, 이렇게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선택한 사람의 수에 따른 순서입니다.


1번은 기존의 방법이죠. 6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의대를 졸업하면 의학사를 받게 됩니다. 연구나 교수직을 원한다면 석사와 박사 과정을 따로 밟아야 합니다. 실제로는 의학박사 타이틀을 위해 대부분이 석박사를 추가로 합니다. 현재 3500명 이상이 이 경로를 통하고 있습니다.


2번은 의전원을 졸업하고 의학 전문석사를 받게 됩니다. 대학원에 따라서는 이를 학사로 취급하기도 하고 석사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전자의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석사부터 시작해야 하고, 후자인 경우에는 곧바로 박사 과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현재 200명 이하가 이 경로를 취하고 있습니다.


3번은 의전원에서 학사과정을 마치는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학사가 4년 걸리는데 의전원 학사는 3년입니다. 다만 취득해야 하는 학점은 일반대학의 조기졸업과 같은 학점을 취득한 다음입니다. 그리고 나서 의전원 (석사)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요. 1번보다 1년이 길면서 졸업시에는 석사가 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50명 이하가 이 경로를 거치고 있습니다.


4번은 의전원 4년 과정 중에 2년 후 박사과정 3년을 별도로 밟는 것을 말합니다.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다시 의전원에 복귀하여 2년을 마저 마치면 박사학위를 받으며 졸업하게 됩니다. 10명 이하가 선택한 제도입니다.


왜 이렇게 복잡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 달리 말하면 인생에서 선택의 여지가 커지는 것입니다. 만 18세가 되기 전에 평생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던 시대에서 필요하다면 성인이 된 다음에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는 괜찮은 제도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고 해도 운용하는 인간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인생입니다. 각 대학이나 (대학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교수들의 이해득실에 따라 위의 방법들 중 하나가 선택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4번을 적어도 하나의 대학에서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의 선택권이라는 측면에서 말이지요. 그럴려면 나라가 책임 지는 국립대학이 적격인데, 문제는 국립대도 실적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지원자가 적은 과정은 뭔가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4번을 봅시다. 4번을 하면 의대 과정 7년 중 3년을 실험에 매달리는 제도입니다. 즉, 이 과정은 연구자가 밟는 과정입니다. 같은 의사인데 졸업 후 개인의 소득은 (천재가 아니라면) 현저하게 처지는 분야가 됩니다. 그러므로 소수에게만 선택받는 제도입니다.


1번은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고등학교 졸업 성적 석차 0.5%에 들어야 가능하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는 1%쯤 되어도 대학만 잘 선택한다면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2번은 통계상 10% 수준이라고 하네요. 10%는 우수한 인재임에 틀림없지만 1%랑 비교하면 수준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 우려하는 사람도 (꽤) 있고요.


인간세상은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니 정책을 정할 때에는 만장일치보다는 다수결을 신봉합니다. 그래서 전체 의대 교수 중 10%가 의전원을 찬성한다 할지라도 개별 기관의 다수결에 의해 모두 의과대학이 될 것입니다. 전국민 이야기도 마찬가지.


모 단체장 선거에서 일단 최근 3년간 회비 미완납 회원은 선거권을 박탈했습니다. 그랬더니 60%가 탈락하네요. 그 다음 투표소가 아니라 우편으로 투표를 실시했더니 40%만 투표를 했습니다. 0.4*0.4=0.16. 후보자가 여럿이므로 1등으로 당선된 사람의 득표율은 전체 회원 대비 10%가 안되더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옛날 자격 제한이 없었던 시절에 투표소에서의 투표율은 80%였답니다. 그러니 당선자는 대략 전 회원의 40% 수준 이상(실제로는 5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었다지요. 회비 미납자를 분석했더니 집행부 반대파가 꽤 된답니다.


(대학) 교육의 주요 정책은 개개 대학보다는 교육부에서 결정하는 게 때로는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육부에서는 의전원을 모두 없애라고 했다는군요. 대학과에서 의대나 의전원 담당자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과대학만 있는 경우보다 (복잡한 구성을 갖는) 의전원(의 존속)에 행정력이 3배 정도 더 들 테니 없애는 게 편할 겁니다. 게다가 선택한 대학도 얼마 안되네요.


법률 쪽의 법학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을 보면 법전원(이른바 로 스쿨)만 남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운영 당사자는 둘보다는 하나가 편합니다. 국민의 입장에선 경로가 하나인 것보단 여럿인 게 나아 보이고요. 실제로 나은지는 모르죠. 그냥 뭐 가능성이 있으니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 하는 일반론적인 의견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했더라면 우리는 대국으로 존재했을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데, 반대로 가까운 대국인 중국와 경쟁이 불가피했을 테니 싸웠을 것이고, 패했다면 우리는 지금 중국의 한 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거든요. 역사상 중국 인근 지역을 보면 다스리기 곤란한 지역은 독립국 지위를 유지하고, 다스리기 편하거나 다스릴 필요가 있는 지역은 편입했지요.


가능성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가능성을 주장하기엔 아무래도 현실에선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의전의 존속이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세는 의전원 폐지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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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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