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의사

의료 2017. 1. 2. 16:22

AI가 발전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의사를 돕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의사는 밀려서 사라질 것 같습니다. 정 반대로 상당히 오랫동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현재 얼마나 발전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는 분야에 한정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합니다.


90년대에 세포병리 중 자궁경부-질 도말의 판독에 프로그램이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들어진 슬라이드를 스캔한 다음 프로그램이 각 세포를 그 때까지 주어진 정보와 비교하여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를 판독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현미경을 통해 백 배 이상 확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비율로 확대한 다음 정상 세포의 정보와 비정상 세포의 정보를 비교하면 어느 정도 판독이 가능했습니다.


당시엔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고, 성능이 낮아서 인간을 대체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10년쯤 지나자 그 사이 프로그램의 버전도 많이 바뀌었고, 정보도 수정되어 (프로그램이 학습을 한 것입니다. 프로그램 자체의 학습이 아니라 개발자의 학습이지만. 잘못된 판독을 인간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비교점을 프로그래머가 수정할 수 있으니 인공지능과 유사합니다.) 판독의 정확성이 크게 향상되었고(적어도 정상은 정상이라고 판독할 수 있는 수준), 가격도 많이 내렸습니다.


인간은 (낮에 일하였다면) 밤에 일을 할 수 없지만 프로그램은 하루 종일 가능하니 이젠 인간의 성능을 뛰어넘게 됩니다. 어차피 비정상 판독이 나오면 모두 인간이 다시 재판독해야 하므로 (우리나라에선 선별검사자가 그렇게 판독할 경우 세포병리의사가 반드시 다시 보도록 되어 있음.) 이젠 선별검사자의 수준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미국의 세포병리 선별검사자는 하루 8시간까지 근무 가능하면서 그럴 경우 100장만 판독할 수 있습니다. 대략 1장에 5분입니다. 초기 기계는 1장 스캔하는 데 5분 가까이 걸렸고, 판독도 밤새도록 해야 120장 정도 처리 가능했었으니 (물론 병행 가능했습니다.) 가격이란 면에서 경쟁력이 없었는데 이젠 속도도 인간보다 빠르고, 하루 처리 능력도 많아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유한한 유효 수명을 가진 존재이므로 항상 새로운 사람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인간은 무지한 상태로 출발하게 됩니다. 프로그램은 투입순간 최신, 최상의 상태가 될 수 있고요. 그러므로 투입 시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경쟁을 할 경우 인간이 프로그램에 밀리게 됩니다.


세포병리 분야의 선별검사는 자궁경부-질 도말에서 시작하여 차츰 그 영역을 넓혀나가라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그 동안 쌓아온 게 있으니 아마도 새로운 분야는 자궁경부-질 도말 분야보다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데까지의 시간이 짧아질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현미경을 통한 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여 년이 지나면 세포병리 분야뿐만 아니라 조직병리 분야도 프로그램이 판독하는 시대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미지나 패턴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좀 되거든요.


더 나아가 어떻게든 인간을 3차원으로 스캔할 수 있다면, 생검없이 판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는 인간에게 별 다른 해가 없이 스캔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와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니 지금은 곤란하겠지요. 또다른 이미지를 다루는 분야인 잔단방사선과 영역에서 얼마나 발전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병리 분야는 현미경의 도움으로 깨끗한 확대 영상을 얻을 수 있으니 프로그램이 인간보다 더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만, 진단 방사선 분야는 그런 이미지를 제공하려면 인체에 유해한 수준으로 방사선 등을 쪼여야 하니 아직은 한계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게 극복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인간을 밀어내리라 사료됩니다.


임상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단순한 정보의 수집 후 해석이라면 프로그램이 인간보다 나을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걸 다 배울 수도 없고, 기억할 수도 없는데 프로그램은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점차 의사를 보조하는 업무에서 의료 현장의 주요 구성자로 프로그램의 위상이 바뀌고 인간은 주도자에서 보조자로 바뀌었다가 퇴출되지 않을까 합니다. 수술도 지금은 인간이 기계를 조절하지만 융통성을 갖도록 프로그램화 할 수 있다면 컨디션이 매일 달라지는 인간보다는 프로그램이 우위에 오르겠지요.


PA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의사를 보조하는 비의사출신의 사람을 말하는데 전공의는 4년마다 배출되므로 수준이 항상 낮은 상태이지만 PA는 20대에 양성해 둔다면 30년 가까이 사용이 가능하니 보조자로서는 더 나아 보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천 명이 현재 비공식적으로 양성되어 활용중이라고 합니다. 현행법 위반인데, 눈앞의 이익이 먼 미래의 불이익보다 커 보이는 법이라서 성황중입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의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사는 선대가 후대를 양성하면서 발전이 축적되어 온 조직인데, 이렇게 되면 후대 의사의 양성의지가 약해지고, 발전이 느려지게 됩니다. 그걸 깨닫게 되는 시점이 수십 년 뒤니까 현재의 사람들에겐 와닿지 않는 문제입니다. 인간은 발등에 떨어진 불만 생각하는 게 보통이거든요.


만약 의사 역할의 프로그램화가 빨리 진행된다면 PA의 폐해가 드러나기 전에 시대가 전환되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의료가 붕괴되었기에 프로그램화가 강력하게 요구되고 촉진될 수도 있겠네요. 뭐 중간에 약간의 인간 손실이야 감수해야겠지요. 인간세상에서는 줄타기가 항상 일어났었고, 훗날에는 비판과 해답제공이 가능하지만 당대에는 잘 모르고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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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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