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에는 책이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친구 집에 갔다가 책을 보면 다른 건 안하고 책만 보고 싶어서 눈치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에 차츰 책이 늘었지만 학생이라서 방학 때나 되어서야 볼 수 있던 때도 있었습니다. 대학 때는 도서관을 자주 출입했지만 아무래도 평소엔 빡빡한 강의 때문에, 시험 기간에 시험준비로 볼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정말로 큰 마음을 먹어야 접할 수 있었죠. 그러다가 의사국시를 준비하면서 공부에 지치면(?) 소설을 보았습니다. 고려원에서 나온 영웅문을 그 때 처음 보았네요.


군을 제대할 때까진 기회가 박탈 당한 때이니 제외하고, 그 이후로 차츰 접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주로 종이책이지요. 그리고 피씨통신이 발달하면서 온라인 문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만 이마저도 접속하는 게 일일 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갈무리하고 모은 것은 후에 대하게 되었죠.


2000년 대 초에는 아직 저작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고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때라 곳곳에 자료들이 그득했습니다. 원래 풍족하면 관심이 가지 않지요. 나중에 받아야지 했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저작권 열풍 때문에 다 사라진 다음에야 아이쿠 했던 게 그 시절입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산다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피씨통신과 인터넷에서 얻은 책(파일본)을 주로 보았습니다.  한 번 잡으면 뿌리를 뽑을 때까지 보던 시절이라서 보다가 안 보다가 했던 것 같습니다. 즉 지겨워지면 몇 달 내지 몇 년간 안 보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제주도에 한라도서관이 생겨서 (2008년 3월) 12월부터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주동이 되어서 아이들을 몰고 다녔는데, 차츰 아내는 열이 빠지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이고 저만 지속적으로 다녔습니다.


비슷한 시기부터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였고요. 누군가는 책을 빌려 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데 눈에 보여야 욕심이 생기는 법이니 꼭 부정적으로 볼 것도 아닙니다. 한라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대략 2800권 정도 됩니다. 기록에 남은 제가 산 책은 지불액이 천만 원 대이고요.


둘은 중복된 것이 꽤 있어서 총 권수는 의미가 없습니다. 굳이 통계를 낸다면 그래도 3천 권은 넘을 것 같습니다. 이 중에서 2500권 정도는 온라인 서점의 블로그에 감상문을 남겼죠. 초기 것을 보면 한심한 것들도 있습니다. 요즘도 그런 게 있긴 합니다만.


도서관에서 빌린 이유는 빌려 오면 안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 성격상 빌린 것은 대부분 읽거든요. 어느 날 시간 관계상 도저히 못 읽고 반납했더니 그게 습관이 되어서 그 정책은 이제 포기했습니다.


 * * * *


저에게 책은 대략 세 부류가 있습니다. 제가 산 책(아마도 천오백 권 내지 2천 권 정도?), 한라도서관에서 빌려 오는 책들, 그리고 파일본.


도서정가제 이후엔 한 권도 안 샀습니다. 저는 주로 구간을 할인폭이 클 때만 구입했었는데 (신간은 5% 이하였을 겁니다.) 그 할인폭이 10%로 제한된 다음에는 굳이 사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거든요. 샀지만 아직 못 읽은 책들하고 도서관에서 빌리면 앞으로 수십 년은 읽을 책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절판된 책은 파일본이 현실성 있는 대안입니다. e북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지나치게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종이책의 40-60% 가격대를 유지하는데, 제 생각엔 10% 수준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300페이지 기준으로 권당 1000원 이하가 적당하죠. 책 안 읽는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읽고 싶은 사람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격을 낮춰야 합니다.


 * * * *


파일본은 대체로 txt 형식이고 일부는 hwp 형식입니다. 소수로 epub인가 하고 pdf가 있고요.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한꺼번에 한 권을 다 읽던 게 전의 취향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한참 읽을 때에는 몇 달을 읽지만 일단 중지하면 오랫동안 (그러니까 역시 몇 달 내지 몇 년간) 안 읽었습니다. 요즘은 파일 수십 개(집에서는 38개, 병원에서는 32개니까 총 70개네요,)를 번갈아가면서 읽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항상 읽는 건 아니고 시간이 날 때에만 읽습니다. 자연히 어떤 책은 1권 보는데 1년 이상이 걸립니다. 소설책이라고 할지라도. 재미가 있으면 단번에 100kB 이상도 보지만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날의 의무 분량인 1kB만 봅니다. 그래서 각 책마다 하루에 보는 총량은 0에서 300kB 사이입니다.


사실 파일본은 절판된 것, 미출간된 것을 보는 유일한 수단이고요, 다른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잘라서 보기 위해서도 유용합니다. 이젠 단번에 보는 것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본 만큼 파일을 잘라서 다른 파일에 옮기면 어디까지 보았는지 구분이 되니까 편리합니다.


방법은 삼국지1.txt을 보다가 읽은 부분만 잘라서 새로운 삼국지1.txt로 옮기는 것이지요. 동일 폴더엔 같은 이름의 파일이 있을 수 없으니 다른 부호를 앞이나 뒤에 붙여서 구분합니다. 난해한 책(예를 들면 철학책)은 한번에 기껏해야 1-2kB를 읽어서 1년 이상 걸려 읽기도 하고요, 소설책은 재미가 있더라도 어떤 대목은 재미없을 수 있으므로 시리즈를 읽다 보면 며칠 만에 끝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몇 년째 읽고 있기도 합니다.


이 방법의 단점인 시간이 지나면 진도가 느린 책들만 남을 우려가 있으므로 진도가 느린 책은 1/4 이하가 되도록 통제합니다. 아무튼 읽는 방식을 잘라읽기로 변경한 다음에는 다른 때와 달리 상당히 오랫동안 (2년 이상) 파일본 읽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 * * *


파일본의 유용성은 어떤 대목을 찾아낼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특정 단어나 문장의 일부로 그 부분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책을 갖고 있더라도 파일본을 구할 수 있다면 구합니다. 재배포하지도 않고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니 저작권법 위반은 아니지요.


언젠가 얼마나 있나 확인해 보니 중복을 포함해서 (나중에 받지 하다가 못 받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긁어 올 수 있을 때 다 긁어 온다는 주의라서 중복이 꽤 됩니다.) 기가급이더군요. 파일 수는 십만 대인 것 같고. 언제 다 보겠느냐고요?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됩니다. 다 읽어야지라는 생각은 안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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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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