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제3자로서의 시각으로 보면 그냥 말꼬리 잡기나 다리 걸기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게 <한 번 결정되면 불변>이라는 전제가 없다면 허망한 소동에 불과하거든요. 고칠 수 있다면 지금이야 어떻든 간에 다음에는 (다수인) 내 마음에 들게 바꿀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루살이나 한해살이도 아닌데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거든요.
따라서 지금처럼 하니 못하니 하고 싸울 게 아니라 고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주력해야 합니다만,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네요. 그러니 소모성 싸움박질에 불과한 것입니다.
원칙적인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일단 교과서를 하나 만듭니다. 다양성이 좋다고 말하지만 국사 같은 건 하나로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택권이 학생에게 있는 게 아닌 이상 선택권 운운하는 건 이상하거든요. 자기 마음대로 가르치겠다는 말과 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한 나라 사람이니 같은 걸 기본으로 하여 배우는 게 옳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차별성은 각자가 따로 완성하면 되니까요.
매년 일정 기간 동안(전 해의 어느 시점부터 1년간이죠.) 각 주제별/항목별로 이의신청을 받습니다. 단순히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자동기각하고 이렇게 기술되어 있는데 내가 가진 요런 자료에 의하면 저런 기술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만 심의합니다. 몇 사람(특히 기존 저자만)이 모여서 소곤소곤 의논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공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갑론을박이 있은 다음 정리가 된 것은 반영합니다. 정리가 안되었으나 계속 토론할 가치가 있으면 다음에 따로 신청받는 게 아니라 <계속 토의 항목>으로 처리하여 계속합니다.
개별사항뿐만 아니라 편집 방향(예를 들어 고대사, 중세, 근대, 현대를 각각 몇 %씩 할 것인가 등등)도 따로 의논해야 합니다.
이런 장치가 완비되면 지금의 싸움은 싸움을 위한 싸움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왜 인간세상에서 어떤 것이 불변할 것처럼 목을 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서 1%가 원하는 것을 마치 99%가 원하는 것인 양 선전하는 것은 이런 공개적 장치를 통하면 다 분쇄할 수 있습니다. 1%는 1%답게 자기들끼리 놀면 됩니다. 저도 혼자놀기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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