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본적으로 기여입학제를 찬성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돈이나 뭐 다른 게 충분해서 제 아이를 어딘가에 입학시킬 만한 능력이 되는 건 아닙니다.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주장할 수 있기도 합니다만.
사람이 왜 부나 권력 같은 것에 집착할까 하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말입니다. 뭔가를 이루어서 자신도 누리지만 자손(때로는 조력자)에게도 넘겨주고 싶어하는 게 인간다운 생각이거든요. 실제로 합법적인 기여혜택제를 보장하는 게 있습니다. 정당이라는 것인데요, 정당이란 정치적 이념이 같은 사람이 모여서 정권을 쟁취하는 걸 목적으로 한 단체입니다. 그리고 이기면 정부 등의 요직에 취직하게 됩니다. 각자의 능력을 기여해서 뭔가를 얻는 것이니 기여입학제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기여입학제는 보통 부모의 재력으로 자녀를 입학시키는 것이니 본인의 기여가 아니므로 불공정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인간세상에선 불공정한 게 자연스러운(정확하게 하자면 인간다운) 것입니다. 요즘 회자되는 금수저-흙수저가 그걸 보여줍니다. 똑같은 22년을 자라면서 누군 유명 유치원-고급 사립초등학교-외국어 중고등학교-외국대학을 나올 수도 있고, 유치원 생략-공립초중고등학교-자립을 밟을 수도 있으니까요.
주머니에 돈이 있는데 냉수로 배를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 적으면 배만 부른 것을 먹으면 되고, 좀더 있으면 맛있는 것으로, 훨씬 많으면 남들에게 자랑하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주머니 사정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배만 부른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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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이런 소문이 있었습니다. 소문이므로 제가 가진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당시에 그렇게 들었다는 것이지 그게 사실인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저에게 헛소문 퍼뜨리지 말라고 하셔도 반박할 근거가 없습니다. 하지만 옛날에 이런 소문이 돌았다는 걸 말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요.
뭐냐 하면 한양대는 기부를 받아서 건물을 하나씩 올렸다는 것인데, 다시 말하지만 저는 그런 소문을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들었을 뿐입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아니 이야기의 진행상 사실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누군가가 돈을 내고 슬쩍 입학을 한 것이겠네요. 대신 누군가가 입학을 못했겠습니다. 그러니 불공정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슬쩍 입학한 사람이 낸 돈으로 수백 명이 좀더 안락한 교실에서, 좀더 충분한 장비를 가지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회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게 사회에 이익일까요, 손해일까요? 개인 차원으로 가면 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았다는 건 명확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이익을 받았고요. 사회에서는 둘이 상쇄되어 아무런 이익-불이익이 없습니다. 냉정하죠? 그런데 수백 명이 헤택을 받았으니 이익입니다. 다른 데 쓰여질 돈이 학교로 흘러갔으니 상쇄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학교에 쓰는 게 다른 데보다는 더 건설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저 혼자는 아닐 것 같지만 말이지요.
또는 건물이 아니라 장학금으로 전환되어 누군가가 학자금을 덜 내고 다녔더라면 어떨까요? 인간세상에서의 일은 대체로 복잡하기 때문에 바라보는 측면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아, 사회의 이익이 아니라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잘못입니다. 이른바 부정입학입니다.
자, 불공정의 차원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제도적으로 기여입학제를 허용하고, 정원의 1% 범위에서 추가 모집을 할 수 있다면, 누군가가 (대신 탈락하였기에) 불이익을 받는 건 사라지는 것입니까? 물론 여전히 불공정하다고 주장하실 수도 있는데, 이젠 불공정한 게 아닙니다. 제도권 내의 행위니까요. 아, 절대 용납 못한다는 분이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나는 그런 반사이익을 누릴 수 없으니까, 내지 나는 그런 것(기여입학)을 할 수 없으니까 질투하는 건 아닐까요? <질투>라는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실 분이 계시겠습니다만 평범한 뜻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너무 질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조금 약한 뜻인 <시기>로 바꿀까요?
운전 중 각종 위반은 누가 할 수 있죠? 네, 차를 몰고 있는 사람이 주로 하게 됩니다. 승객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고,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같은 사람이 운전도 하고, (운전자의 상대개념인) 보행자가 되기도 하는데 각자의 위치에 섰을 때 조금 다른 행동을 보이는 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해가 엇갈려 분쟁이 있을 때 누가 옳지요? 네, 내가 옳습니다. 내가 그르다면 분쟁하지 않을 테니까, 분쟁이 있다면 분명 내가 옳은 것입니다. 남이 보기에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먼 옛날로 갈 것 없이 조선을 보면 음서제도가 있었습니다. 능력이 안되는 사람을 과거도 안 보고 등용하는 제도죠. 왜냐하면, 사람이 사는 사회니까. 합법적인 뒷구멍(아니, 합법적이니 옆구멍이겠네요.)이 있으면 불법적인 뒷구멍이 줄어듭니다. 불법을 처벌하기도 쉽고.
인간 사회에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게 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즉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숨통을 틔워 놓고 그 힘을 선용하는 게 최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뒷구멍으로라도 입학하고 싶어하고, 그게 금지된 상황에서는 소수만 이익을 보고 뒷구멍을 열겠지요. 그걸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자는 게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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