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에 대하여

사회-생활 2016. 12. 23. 10:57

회식이라고 함은 모여서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옛날, 그러니까 개인이 가난할 때에는 모임(대체로 회사나, 동창회나, 친구 등등)에서 먹는 것이 중요한 행사일 수 있었습니다. 일단 회비를 내면 (또는 누군가가 사주는 것이라면) 이제 개인적인 비용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으니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러 갔죠.


제 처음 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동창회 모임에 참석한 것입니다. 최고 선배가 고등학교 22회 졸업생이고, 23회, 25회 그리고 27회가 전부였습니다. 저는 28회였고요. 25회부터는 평준화 이후 세대이고, 그 위 두 선배는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 다음 전입한 경우였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가셨다고 들었죠. 하긴 그 때 졸업하신 다른 분들은 대학교에 갈 실력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던 시기였습니다.


인턴 때에는 과에서 보통 시작 때와 마칠 때 한번씩 해주는 게 관례였습니다만, 과에 따라서는 송별회식만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때에는 사실 손님 비슷한 지위였으니 본격적인 회식은 아니었습니다.


레지던트 때부터가 본격적인 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엔 통행금지가 실시되던 때라서 11시 반 정도가 되면 마지막 택시를 잡느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11시가 한계라고 볼 수 있던 시절입니다. 이상하게도 그 땐 나이트 클럽에 가는 게 관례였던 것 같습니다. 노래방도 차츰 들르는 게 관례화되던 시절이었고요. 그러니 1차 회식(보통은 고기집 내지 찌개집), 2차 노래방, 3차, 나이트 클럽. 3군데 모두 술이 항상 곁들여졌습니다.


저는 술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노래도 안 부르고, 춤도 안 춥니다. 음주가무라는 하나의 덕목(?)을 철저히 피하는 사람이었죠. 동창회 때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배가 하사하는 술을 거부하는 행위를 했었고, 다들 손을 들고는 결국 인정해줬습니다. 입국식 때도 마시지 않아서 여러 교수님들이 당황해 하셨고, 결국은 시간이 지나자 '쟨 술 안 마시는 사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도 점차 술을 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어도 되는 분위기로 흘러 갔습니다. 제 공이라기보다는 시대가 그렇게 흘러간 것입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취업을 한 다음에는 병원 단위의 회식이 있었습니다.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누군가가 안 마셔도 대체로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죠. 소수가 강제하는 분위기인데, 이젠 머리가 굵어졌다고 강제해도 거부하는 데 큰 지장이 없더군요. 원래,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강제로 먹일 수는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본인이 안 마신다는 데 별 수 있나요? 강제해도 거부하면 본인만 쪽팔리는 상황이 되므로 두어 사람이 강력하게 거부하면 강제로 먹이려는 사람은 없어집니다.


아무튼 이제는 학교나 병원의 회식에 거의 참석을 하지 않습니다. 회식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보거든요. 어차피 어느 쪽이든 모이는 사람은 거의 백 명이나 됩니다. 친목을 도모하기엔 수가 너무 많죠. 뭐 남의 돈으로 먹는 것에 한이 맺힌 것도 아니고.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전 음주가무를 싫어하기 때문에 정말로 밥먹는 것 외엔 할일이 이야기밖에 없는 상황인데, 어차피 그런 자리에 가면 보통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앉으니 자연스레 저 같은 사람은 모여 앉게 됩니다. 그러니 이야기 할 거리도 없죠. 그냥 소소한 안부 정도만 나누곤 다른 이들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신세라고 할까요?


더 큰 이유는 귀찮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어지간한 일은 다 귀찮아졌습니다. 학회 참석을 위해 출장계를 제출하면 여비(비행기 삯만 주니까 공항엔 뛰어가야 하나 봅니다.)랑 숙박비(잘하면 여인숙엔 묵을 수도 있는 액수지만 어쨌든 그런 항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식비(이건 아끼면 실제로 먹을 수는 있는 액수)를 주는데, 이것도 귀찮아서 그냥 제 돈으로 갔다옵니다. 그러니 멀뚱멀뚱 앉아서 밥만 먹는 자리가 달갑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참석하는 유일한 회식 자리는 과에서 송년회를 할 때입니다. 어제도 송년회가 있었네요. 저는 송년회를 하지 말고 신년회를 하자는 주장인데, 다들 찬성하지 않는 분위기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근거는 송년회는 연말에 합니다. 다들 아주 어렵지만 않으면 연말에 모임을 갖으니 장소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1년에 한 번 모일 것이라면 연초에 모이면 되지요. 한가하거든요. 애들도 - 저희 송년회는 가족 동반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그렇게 유도했었습니다. - 방학이니 별 문제 없이 참석 가능하고요. 소수의 의견은 존중하되 다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니 계속 건의하는 수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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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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