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과장으로 근무하다 보면 손님들이 꽤 찾아옵니다. 방문 시간이 식사시간과 엇비슷하면 아무래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전문의들에게 해당 업무를 완전히 떠넘기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 모두 넘기지만 실제로 사고가 나면 책임은 제가 져야겠죠. 다행히 제가 인지한 큰 사고는 없었습니다.) 실제로는 제가 만나는 경우라곤 그냥 왔다가 간다는 인사에 그치기 때문에 접대 사안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한두 번은 식사를 대접받았던 것 같고 두어 번은 제가 사줬고 나머진 같이 식사를 안하는 것으로 했었네요. 그러니 다들 해당 전문의들에게 직접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접 받은 것은 처음에 과장이 되어 뭘 모를 때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조금 지나니 누가 찾아오는 게 부담이 되어 슬슬 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분하고의 식사가 생각나는데, 찾아온 게 점심 때라 밥먹고 이야기하자고 하면 야박할 것 같아서 데리고 나가서 밥을 먹은 다음 제가 계산을 하니 당황해 하더군요. 나중에 이렇게 얻어 먹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그 분이 젊어서 경력이 별로 없어 보였지만요.
어렸을 때랑 젊었을 때에는 윗사람이 사는 것이라는 교육을 참으로 많이 받은 탓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다른 병원 과장님이 돈을 버는 사람(제대로 직장을 잡은 사람이겠죠? 전공의는 벌어도 살 일이 없었으니.)은 돌아가면서 사는 것이라고 일깨워주더군요. 사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 꺼리낌이 없지만 알고 있던 어떤 정의가 바뀌는 것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도 함께 있던 아랫사람들(후배 전문의들과 직원들)에게는 대체로 제가 사주었습니다. 본인들이 사주겠다고 하는 걸 굳이 막지는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아주 높으신 분들에게 가끔 대접을 해야 한다는 걸 망각하고 살아서인지 미움을 조금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그 애는 원래 그래. 하고 넘어갔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제게 어떤 전언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누가 뭘 사주겠다고 하면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는 사람이면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부담없이 따라가 먹거나 물건을 받습니다. 모르는 사람이거나 업체 관련자이면 부담 없는 범위 내에서 받으려고 노력하고요. 예컨데 과일 상자가 들어오면 풀어서 과원들에게 나누면 마음이 편해지죠. 누구나 학습이 되기 때문에 점차 외부인의 선물이 적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연전에 어떤 업체 관계자가 와서 봉투를 주기에 되가져가라고 했더니 이미 회사에서는 지출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곤란해 하기에 그럼 과일 같은 걸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주거나 본인이 쓰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직원들에게 아무것도 전달이 안된 것으로 보아 본인이 썼나 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저 혼자뿐일 리는 없으니 언론에 나온 전체 접대비용 중 일부는 중간 전달자(내지 기획자)가 횡령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안 주고 안 받기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여 왔습니다. 학생들이 스승의 날이 되면 뭔가를 들고 찾아옵니다. 선물 갖고 오지 말라고 매년 말하지만 공통 지도교수가 여럿인데 특정인만 생략하기가 껄끄러운지 꼭 들고 오더군요. 그런데 올해 김영란 법이 통과되었으니 아마 내년부터는 안 올 것 같습니다.
10여 년간 받은 것들이 연한만큼 될 텐데 제가 쓰고 있는 것은 탁상시계 하나뿐입니다. 나머진 다 교실원이나 다른 분들에게 슬쩍 줬습니다. 술이 제일 많았던 것 같은데, 전 술을 안 마시니까 아주 가뿐하게 술을 마시는 다른 누구에게 넘기죠. 차 같은 것도 저는 특정 커피만 마시니까 전부 다른 이들에게 전달. 아직도 책상 위에 있는 탁상시계는 첫 학생들이 뭘 드릴까요? 하고 묻기에 필요 없다고 했더니 그래도 사야 한다고 말해서 그럼 튼튼한 탁상시계 하나 사다오 했더니 놋쇠로 된 걸 사온 것입니다. 2-3년 지나니 시간이 안 맞지만 매달 10분 정도 조절하면 쓸 수 있으므로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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