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의 경험 등으로 현재의 기준을 만들어 냅니다. 그 경험에는 개인적인 자료도 있겠고, 법이나 규칙 같은 이미 만들어진 것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라가 본 어떤 사실에 입각하여 그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불쾌한 생각이 들고 또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 것은 <사실>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 말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 <사실>, <진실>, <진리>에 대해 규정한 바가 있습니다. 꽤 괜찮은 주장이기 때문에 그 개념을 차용합니다.
<사실>은 일어난 일 자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본 것이지요.
<진실>은 어떻게 해서 그 <사실>이 발생했는가를 설명을 곁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과 정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한적해 보이는 신호등이 있습니다. 한 사람(김씨라고 설정합시다.)이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치다가 경찰관에게 걸려 위반 딱지를 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씨라고 합시다.)은 아무도 안 보는 곳이지만 신호등을 잘 지켰습니다.
사실만 보면 김씨는 잘못이고, 이씨는 잘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교통신호를 대략 80%쯤 준수한다고 합시다. 김씨는 일반적으로 95%를 준수하던 사람입니다. 이씨는 40% 정도이고요. 김씨는 차도 사람도 없는 곳에 신호등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던 것이고, 이씨는 그곳에서 경찰관이 매복해 있다가 단속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여서 단속을 피하기 위해 신호를 지킨 것이라고 합시다.
잘못된 점은 필요 없는 신호등을 설치한 사람과 그곳에서 함정단속을 한 경찰관에게 있습니다. 규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이지 사람이 규칙을 위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잘못된 규칙은 그걸 만들거나 지키라고 강요하는 사람에게 더 큰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로에서 만난 어떤 사람의 어떤 행동에 대해 하나하나 잘잘못을 가릴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으로 그 사람이 항상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좌회전 신호등이 켜졌는데 꾸물거리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다가 안 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유턴이 되는 줄 알고 기다렸더니 막상 신호가 떨어진 다음 유턴 금지인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것일 수 있거든요. (뭐, 제가 써놓았지만 현실성은 떨어지네요.)
갑작스레 차선을 두세 개 바꾸려는 사람이 얌체일 수도 있지만 빠져나가려면 오른쪽 차로로 가야 한다고 믿었는데 갑자기 여기서는 1차로에서 빠지는 램프가 있다면(그러니까 초행이여서 제대로 표지판을 못 본 사람이겠습니다.) 처음 가는 사람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 못 나가면 그 다음 길은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면 기를 쓰고 빠져 나가려 할 테니 그 사람에게도 변명할 여지가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야 아, 여기서 못 나가면 다음 교차로에서 빠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초행인 사람에겐 그게 안 통합니다.
모든 걸 아는 신적인 존재라면 명확하게 어떤 마음을 품고 이런 행동을 했었는지 알겠으나 사람은 모르니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또는 비판)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세상에선 항상 오류가 존재합니다. 잘해 보겠다고 했는데 일을 망치는 것도 비슷한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로 인간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보며, 그에 따라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옛날에는 (물론 지금도 종종 그렇습니다만)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 화를 벌컥 냈었는데, 요즘은 아주 명백한 잘못(예를 들어 같은 불법 유턴이라도 반대쪽에 아무도 없을 때와 반대쪽에서 차가 잔뜩 오고 있는 상황에서 하는 건 다르지 않겠습니까?)이 아니라면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화를 덜 내게 되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저는 가능하면 불법인 상황을 만들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가혹한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명백한 잘못까지 눈감아주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문화가 발전하면 고급문화에 대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직접적인 말투보다는 돌려서 말하는 걸 교양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것이지요. 반어법도 수준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말인데,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알아듣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잘못 쓰면 몰매 맞기 쉽상입니다. 난 부정의 뜻으로 긍정을 말했는데, 상대가 무식하면 그게 긍정으로 들리니 화를 벌컥 내는 것입니다. 해명해 봐야 거짓으로 몰리거나 하찮은 변명으로 처리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런 경우에는 한번 낙인 찍히면 선입견을 수정하기도 쉽지 않죠.
이러면 난처합니다. 자, 반어법으로 말한 사람이 잘못입니까? 물론 잘못일 수도 있지요, 상대의 수준을 모르고 말을 했으니. 하지만 그러면 사회가 점점 슬퍼지잖아요, 그러니 잘못이 적다고 해줍시다. 이해를 못한 사람이 잘못인가요? 네, 수준이 낮아서 미안합니다. 결국 둘 다 큰 잘못은 없는데, 분란이 발생했네요. 어쩌죠?
어떤 사실에 대한 견해는 보통의 경우에는 옳지만 특수한 경우에는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 혹시 특정 시점의 특정 사건에 결부하여 이 글을 작성한 게 아니라는 점을 여기에 밝혀 둡니다.
작가들이 동일한 사건을 가지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다르게 구성하여 쓴 것을 보신 분이라면 제 글의 진의를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른바 선배라는 것 (0) | 2016.12.23 |
---|---|
회식에 대하여 (0) | 2016.12.23 |
기여입학제 (0) | 2016.12.05 |
국사 교과서 논쟁을 보면서 (0) | 2016.11.29 |
제주도에서 사는 것의 불편함 (2) | 2016.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