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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근일·언론인
그러나 '종북주의자'들은 분명히 있다고 하는 소리가 최근 공안당국도 '수구 꼴통'도 아닌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이 '좌파 본당(本黨)' 차원에서까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로 시인된 셈이다. 그리고 그런 '종북주의자'들이야말로 '진보' 진영의 몰락을 불러온 원흉이라는 비판도 함께 나왔다. 만시지탄은 있으나 당연히 나와야 할 자성(自省)이었다.
한국 정계를 먹어 들려는 '종북주의자'들의 전술은 그러나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8·15 해방 공간 때부터 있었던 일관된 현상이었다. 8·15 직후의 건국준비위원회에는 처음엔 안재홍씨 등 우파 민족주의자들도 참여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끼어들면서부터 그 단체는 이내 공산당 프락치들의 일방적인 놀이터로 먹혀 버렸다. 이처럼 공산주의자들은 일단 중도 좌파 정파에 편승한 다음 그것을 야금야금 내부적으로 먹어 들어가는 수법을 쓴다.
진보당 등 1950년대의 혁신계 운동도 공안기관이야 어떻게 보았든 결코 공산주의운동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4·19가 나자 혁신계의 한 지평에는 느닷없이 웬 '민주 민족'이니 '민족 해방'이니 하는 구호들을 즐겨 쓰는 일단의 낯선 총잡이들이 뛰어들었다. 그러더니 그들은 기존의 서구 사회민주주의적 혁신계를 '우경 기회주의'라고 매도하기 시작했다. 바로 혁신계에 편승해 그것을 '대한민국 체제하의 진보운동' 아닌 '친북 NL(민족해방)'운동으로 끌고 가려던 1세대 '종북주의자'들의 출현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60·70년대를 통해 반정부운동의 중심부에서는 멀리 떨어진 음침한 구석에서 자기들만의 밀교적인 분파를 만들어 주류 학생운동을 자기들 쪽으로 견인해 가려고 부심했다. 그러면서 때때로 '민주화운동'에 대한 당국의 탄압에 좋은 빌미를 제공하는 일련의 어설픈 지하 사건들을 저질러 내곤 했다. 단순한 '민주화'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이고 '민주 민족 해방'으로 가야만 진정한 '혁명'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1979년까지는 그들의 '종북주의'가 당시의 사회운동의 중심부에 전면적으로 파급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1980년대부터였다. 그들의 2세대라 할 386 NL계열과 그 후속 세대 '종북주의자'들은 드디어 민주화 본연의 자리를 지키려 했던 주류 사회운동의 주조정실을 몽땅 공중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1923년에 러시아 온건 사회민주주의계열인 멘셰비키 지도자 마르토프가 작고했을 무렵 러시아 사회운동이 볼셰비키 1당 독재에 전면 포획(捕獲)당한 것과 비슷한 사태였다.
지난 5년 동안에도 이들 '종북주의자'들은 '일심회 간첩' 감싸기, 북한 인권 말살 옹호, 북한 핵 지지, 한·미동맹 해체, 평택 미군기지 반대, 빨치산 추모제, FTA 반대, 북한 선군정치 찬양, 6·15 국경일 제정, 연방제 통일 등을 끈질기게 부추겨 왔다. 그들은 '진보'의 이름을 도용(盜用)해 '김정일 추종=진보' '김정일 비판=보수'라는 해괴한 분류법을 이 사회에 확산시켜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우화 같은 세태는 시대의 버림을 받았다. 양식 있는 '진보'라면 이제야말로 '종북주의자'들과 미련 없이 헤어져서 합리적 민주적 대한민국적 '진보'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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