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학자와 관료들에게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통일을 대비하여 기금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로 드는 예는 독일인데,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큰 독일도 통일 후 일시 휘청거릴 정도로 돈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돈을 조금씩 모아뒀다가 나중에 통일이 되면 사용해야 한다는 아주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마련합니다.
저는 두어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반대합니다.
먼저 주인이 없는 돈은 쓰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통일이라는 주제로 거둬들인 돈은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담자와 수익자가 다르거든요. 이 둘이 겹치면 관리주체가 분명해지는데, 불명확하면 관리주체도 불명확해집니다. 남북이 갈린 지 71년이 지났습니다. 한동안은 금세 다시 하나가 될 것이라고 양쪽에서 다 국민들에게 세뇌하다시피 강조했었던 이야기인데, 무색하게도 71년이 지났습니다. 해방동이라고 해도 이제 초상 치룰 때가 눈앞에 닥친 세월이지요. 그 때 어른이었던 이는 90이 넘어 버렸고요. 이집트를 빠져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만에 물갈이 된 걸 아시죠? 그보다 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독일은 분단후 경색되었다가 오랫동안 노력해서 점차 교류를 확대해 왔던 곳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경색된 곳이고요. 독일은 수십 년의 사전 투자 후에 통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도 수십 년은 걸려야 무력을 통하지 않는 통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장년층이 노년층으로 바뀐 다음에야 통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돈을 거둔다고요? 누굴 위해서?
다음으로, 통일이 이루어진 다음에 북한 주민들에게 지출해야 할 돈을 마련하는 게 주목적이라고 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 땅을 나눠주면 됩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은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할 수 있는 상황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 다음에 땅을 나누고 받은 그 땅을 처분해서 다음 삶을 사는 기반으로 하도록 하면 됩니다. 땅 분배는 국가에서 필요한 땅은 국유지로 해 놓고, 나머진 모두 경쟁을 통해 배분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평양이 앞으로 북한 지역의 중심지가 될 테니 평양만 지원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지원자가 많으면 배분되는 땅이 좁아집니다. 또 중강진은 지원자가 적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개인에게 할당되는 땅은 엄청나게 넓을 것입니다. 결국 각 개인이 취득하는 시점에서는 비슷한 가치를 나눠 가지게 됩니다.
그 뒤에 난데없는 특정 지역 개발 소식이 들려온다면 불합리하겠지요. 숨어서 정책을 만들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주도에 제2 비행장을 만들려고 한다가 아니라 만들어야 할까?가 먼저 나와야죠. 그 다음엔 만든다면 어디가 적당할까?를 널리 알려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여기가 최적지다라고 발표할 게 아니라 정보를 모두 풀어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2공항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날 수도 있고, 또 필요하다면 장소도 정해집니다. 몇 사람이 모여서 쏙닥거린 다음 발표를 하니 특정 지역에 특혜니 아니니 하는 뒷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의견 모으는 게 꽤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옛날 요즘 사람들이 욕을 잔뜩 하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빨리 발전시켜야 겠다는 의욕이 앞섰으니 정부가 결정을 하고 발표를 하는 게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이젠 아닙니다. 아직도 공무원이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 정치인, 관료, 시민이 있는 한 후발되는 문제점은 끊임없을 것입니다.
북한 지역도 배분하기 전에 10년 계획 20년 계획을 미리 알려야 합니다. 그 다음은 개인의 선택이죠. 난 후손에게 1000만 평을 물려줄래 하고 함경도 오지를 신청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평양이나 개성의 요지를 선택하여 100평을 받는 사람도 있겠죠. 그걸 왜 우리가 걱정해 줘야 합니까? 당사자들의 인생인데요. 자신들이 선택하여 배분/취득한 땅을 처분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자본이 됩니다. 그 다음에야 남한 사람처럼 열심히 일해서 나머지 생을 이어가야죠. 이 때에는 돈이 아니라 잘 잡힌 체계가 이들을 보호하게 됩니다. 사기당하지 않게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주고, 적응한 다음에는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이미 연금 이야기에서도 썼었지만 그리고 실제로 국민연금에서 드러났지만 원주인과 동떨어진 돈 덩어리는 정책 입안자나 기타 손을 댈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공돈처럼 보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돈을 조성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난 내가 낸 세금이 나(좁은 의미의 나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나)를 위해 쓰여지기를 원하지 타인에게 쓰여지는 것도, 타인에게 쓰여질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슬그머니 소진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왜 대체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음에 반응할까요? 그게 제일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준비하려면 진짜로 필요한 것보다 몇 배나 소모해야 합니다. 북한 사람도 사람입니다. 일방적으로 먹여야 할 거지가 아닙니다. 지금도 풍족하지는 않더라고 할지라도 다 먹고 살고 있거든요. 통일은 사람답게 살자는 것이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까를 고민하고 있어야 합니다. 돈 문제는 통일이 임박하면 그 때 가서 (발등에 떨어진 불인) 통일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고민해도 됩니다. 어차피 지금 장년 세대랑은 무관해 보이는 시기입니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먼저 어떻게 할 것인지 체계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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