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차를 샀을 때 어머니의 성화 때문에 자주 세차를 했었습니다. 저는 차란 사람 또는 물건을 어떤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주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에 운행에 지장이 없다면 세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기조에 깔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어머님의 잔소리엔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블로그를 보다 보면 차를 아주 잘 닦아서 반작반짝거리면서 깨끗하게 관리하시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저는 그런 것 반대하지 않습니다만 제 자신은 안했으면 하는 생각을 더 자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로 이사를 오면서 직접적인 간섭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살던 아파트에서 제일 지저분한 차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아내가 가끔 차를 닦을 정도였으니 할말이 없습니다. 세피아의 색이 암록색이였기 때문에 조금만 먼지가 앉아도 금세 표가 났습니다. 이 색을 택한 건 당시 차를 보러 같이 다닌 사람의 영향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세피아를 아내에게 주고 트라제를 샀을 때엔 회색을 선택했습니다. 트라제는 스스로 세차하기엔 차고가 높은 편이라 세차를 안해도 되는 핑계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걸레는 들고 다니면서 유리를 주로 닦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내려 오시면 항상 뭐라고 하셨죠.


모닝은 아내가 세피아를 폐차한 다음 대체품으로 산 것이라 가끔 세차장에 가서 닦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전염이 되어서 사고로 벗겨진 부분은 그냥 스프레이로 덧칠만 하고 말았더군요. 트라제는 녹이 슬은 부위가 거의 없었는데 그보다 2년 젊은 모닝은 몇 군데 있습니다. 어쩌면 자동세차의 부작용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오닉은 4개월이 지났는데, 아예 걸레조차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트라제에서 내린 짐들은 다 어디론가 처박히더니 실종되었고, 그 때 걸레도 없어졌네요. 아이오닉 색깔은 아내가 골랐는데, 또 회색입니다. 아마 제가 세차를 안할 거라고 짐작한 모양입니다.


뭐 어떤 분은 차를 닦지 않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아라고도 하시던데, 구경하시는 분들 세차, 하고 계십니까?


아, 내부는 바깥보단 자주 닦거나 털었습니다.


밖을 닦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보존한다는 이야기는 트라제 무세차 10년의 경험으로 볼 때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철 염화 칼슘이나 바닷가 여행 후 하부 세차의 필요성은 인정합니다만 그건 누구에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죠. 제가 말하는 외부 세차는 눈에 보이는 부분이니까요. 제 머리에서 나오는 세차의 필요성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거나, 타인의 눈을 어지럽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고, 자기 만족을 위해서도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저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기 만족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것인데, 그 정도로 더럽게 다닌 적은 없으니 안해도 되지 않을까요?


언젠가 어디에 놀러 갔더니 얕은 개울에 차를 세우고 열심히 닦으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자신의 차 껍데기는 깨끗하게 보일지 몰라도 남에게 불쾌감과 해를 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하류에서 물놀이 하는 사람은 세차로 인하여 오염된 물을 가지고 놀게 되니까요. 물론 세차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모두 이런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차의 외관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저는 이해가 안되거든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차의 고유 목적(운반)이 제일 중요하고 다른 건 부속적인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급 외제차를 탔다고 으스대는 사람이나 차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사람에겐 호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 사고를 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이상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차량 파손 외에 손해배상까지 일부 감당해야 하는 이중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빨리 주 가해자가 배상을 전담하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무세차로 인한 더러움이 남에게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는 색을 선택하게 되더군요. 세워져 있는 차들에 가까이 가면 가끔 유심히 살펴봅니다. 특히 비가 온 직후에 아직 세차가 안된 차들이요. 뜻밖에도 흰색은 얼룩만 지지 않는다면 때를 덜 타는 것 같습니다. 회색도 괜찮고요. 짙은 노란색(모닝 색깔이어서 압니다.)도 덜 탑니다. 빨간색이나 검은색은 조금만 가까이 가도 더럽다는 걸 쉬 알 수 있고요.

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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