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8일자]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내달리고 있다. 정부나 의사 모두 타협의 여지를 배제한 채 물러설 의향이 없는 '치킨 게임' 양상이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의사들의 의대 정원 반대를 '밥그릇 지키기'로 규정하고 '사법처리' 등을 공언한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의료 현장을 전혀 모르고, 관료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의대 정원만 늘리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완전히 잘못된 처방전을 내놨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의사 집단을 악마화, 국민들과 갈라치기를 함으로써 4월 총선에서의 승리를 얻으려는 선거 전략이 숨어있다고 얘기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국민 대다수도 찬성하는 입장인데 의사들은 왜 의대 증원에 반대할까? 의사들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자. 강압이 아닌 이성과 과학에 의한 합리적 해결을 간절히 바라서다. 정부와 의사 간 충돌 장기화의 피해자는 국민들과, 밤잠 못자고 의학을 공부해온 의학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 의사수 부족한가?…"지금도 대한민국 의사 증가율은 OECD보다 가파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국가의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적 조치"라며 "우리나라는 현재 의사 수가 매우 부족하다. 가까운 미래는 더 심각한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상황을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의료 취약 지역에 전국 평균 수준 의사를 확보해 공정한 의료 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는 데에 약 5000명의 의사가 더 증원돼야 한다"며 2035년까지 급속하게 진행될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1만여명의 의사가 더 필요하다는 게 여러 전문 연구의 공통적 결론이라고 언급했다. 또 의사 수를 매년 2000명 증원해야 27년 후인 2051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도달하는데, 고령인구 증가 속도는 OECD 평균의 1.7배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그 근거로 제시한 전문 연구는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서울대학교 홍윤철 교수, 2020년)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2023년)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 추계 연구'(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0년) 등 3가지다. 이가운데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만 명이라는 숫자를 제시한 적은 없다"고 말했으며, 서울대 산학협력단 보고서 저자인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35년이 되면 만 명 정도 부족하게 되는 건 맞다"면서도 "정부의 2000명 증원 대신 2023년부터 입학 정원을 매년 5%씩 2030년까지 확대하고, 이후부터는 2030년 수준을 유지하는 방식이 필요한 의사 인력 수준을 가장 충족하는 시나리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의사들은 지금도 한국의 의사 수가 일본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 수는 2010년 7만3000여명에서 2018년 9만8000명으로 8년간 32.47% 증가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06년 1.82명에서 2022년 2.61명으로 약 43.4% 늘었다. 한국의 의사 수 누적 증가 속도는 지금도 OECD 평균의 2.6배로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는 한국에서 의대 정원 확대없이도 의사 수의 증가가 매우 가파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10년간 의사 수가 약 4만명 증가했다는 사실은 맞지만, 이를 비율로 환산하면 의사 대비 약 15% 증가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근거로 꼽는 OECD 통계에 대한 해석도 서로 다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한국(2.6명)이 일본과 같고, 미국(2.7명)과 비슷하다. 한국 의대 정원은 그동안 3058명으로 고정돼 있었는데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12년 2.0명에서 2022년 2.6명으로 늘었다. 이는 개업의들이 은퇴 나이 이후에도 일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수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만이 아니라 새로운 의사의 유입량과 은퇴하는 의사의 유출량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은퇴 시기가 늦춰지면서 의사 수의 순증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의대 정원이 동결되면 의사가 늘지 않고, 의대 정원을 늘려야 의사가 늘어난다는 것은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오는 2040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4.60명으로 OECD 평균 5.09명과 격차가 줄어들다가 2047년 OECD 평균을 넘어선다. 2047년 1000명당 한국의 평균 의사 수는 5.87명으로 OECD 평균 5.82명을 앞지른다.

정부는 급격한 노령화로 인해 의사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하는 데 의협 측은 노령화 수준이 우리보다 빠른 일본은 오히려 의사수를 줄이려는 추세라고 반박한다.

◇의사가 공무원인 영국 vs 민간인이면서도 국가의 엄격한 통제받는 한국

OECD 의사 수 통계에서 주의깊게 봐야 할 또다른 항목은 각 나라별로 의료체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선진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우리보다 많다고 단순 비교하는 건 오류라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OECD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가 많은 국가는 오스트리아(5.4명)와 노르웨이(5.2명), 리투아니아(4.5명), 체코(4.3명), 영국(3.2명)이고, 임상 의사가 적은 국가는 한국(2.6명)과 일본(2.6명), 멕시코(2.5명)였다.

그런데 영국이나 그리스 포르투갈 캐나다 등 의사 수가 많은 나라들 가운데 상당 수는 의사가 국가에 고용된 공무원이다. 의사가 공무원이니 아무리 숫자를 늘려도 의사들이 반발할 이유가 없다. 고용과 월급, 법이 정한 근로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전국 단일 의무 의료보험 체제를 갖고 있다. 의사가 마음대로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정하지도 못하면서 일자리와 소득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공의들은 주당 평균 80시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하면서 일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정부가 정하는 수가에 의해 의사들의 수입이 좌우된다. 임금과 고용이 보장되지 않고 진료 횟수를 늘려야만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다. 이렇게 의료체계가 다르다 보니 한국과 일본 의사들은 무리해서라도 진료 횟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의사들이 보는 진료 횟수는 연간 평균 6000건, 일본은 약 4000건에 달한다. 한국 의사들의 하루 평균 진료 횟수는 20건이다. 반면 그리스는 하루에 평균 2건, 포르투갈은 3건에 불과하다. 진료를 안 봐도 국가에 의해 고용과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의료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의 불을 당긴 건 필수·지역의료의 위기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필수·지역의료는 얼마나 시급할까? 이에 대해 의사들은 의사 수 문제는 의료접근성과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의사밀도(10㎢당 활동의사 수)는 13.04명으로, OECD 중 세번째로 높다. 도시와 농촌 간 의사밀도 차이는 OECD 14개국이 1.8명(도시 4.7명·농촌 2.9명)인 반면, 한국은 0.5명(도시 2.6명·농촌 2.1명)으로 일본 다음으로 작다.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OECD 통계에서 필수의료서비스 (Essential health service)의 접근성과 품질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이 평가에서 OECD 국가 중에서 의사 수가 가장 적다는 한국과 일본이 수위에 있다. 우리나라는 필수 의료 서비스에서 2019년 영국 다음으로 2위. 2021년 평가도 아주 높은 편이다. 의사 수가 필수의료 체제 유지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어느 나라나 '100% 의료 접근'이 보장되는 나라는 없다"며 "당장 정원을 안 늘리면 큰일 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과연 맞는 말인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의협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99.2%는 원하는 날 외래진료가 가능하고, 접수 후 대기시간은 은행보다 짧은 평균 19.9분이다.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환자 비율이 OECD의 경우 44%인 반면 한국은 당일 가능하다. 뇌경색환자의 사망률은 한국이 OECD 평균의 절반 이하며, 치료 가능한 사망률은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로 낮다. 의사 수가 태부족하다면 의료 서비스도 형편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의협 측 주장이다.

◇필수·지역 의료문제 해결은 의대 증원으론 풀 수 없다

정부 말대로 의사 수가 부족하고, 의대 정원과 의사 수를 늘리면 '낙수효과'로 필수·지역 의료 불균형 문제가 해결될까? 의사들의 대답은 '노'이다. 정원을 늘린다고 필수·지역의료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구소멸지구가 늘어가고,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등에서 보듯 민사 소송으로 환자와 병원 간 해결됐던 문제들이 형사처벌 대상이 된 마당에 누가 수가도 낮은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를 하려고 하겠냐는 것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0.6명대로 떨어졌다. 아이들이 없는데 누가 지방에서 의사를 하려 할까.

일본 의료경제학회장인 하시모토 교수는 "의대정원 확대로는 필수의료 ·지역의료 의사인력을 충원할 수 없다. 의사 수보다 의대 교육제도 개편, 전공의 수련방안 개선 등 의사인력 양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일본은 고령화에도 오히려 의료수요 감소를 경험했다. 일본은 향후 의료수요 증가가 없을 것으로 가정해 장기적으로 의사수급추계를 실시하면서 의대정원을 감축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사들은 마음대로 의료서비스 댓가를 받지 못한다"

윤 대통령은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 "김대중 대통령은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500명에서 1000명으로 두 배 늘렸다. 그때도 '(증원 규모가) 많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니 사회 모든 분야에서 법률가들이 자리 잡게 돼 우리나라 법치주의 발전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며 "민주화에도 굉장히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또 "각 분야에 법률가들이 배치되고 전문 분야가 생기면서 일정 시간이 지나니 소득도 높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법률가가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대한민국의 의사들이 자신들이 제공하는 수술이나 의료 서비스의 댓가를 변호사처럼 마음대로 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 정부의 의료수가가 그 가격을 결정한다. 국가가 정해주는 대로 돈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의료 서비스 가격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정부가 정한 수가는 그래프에서 보듯 평균 원가의 78% 에 그친다. 이런 낮은 수가를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통해 보충한다. 미국 등에선 간단한 수술에 수천만원씩 내야 하며, 그것도 몇달을 기다려야 하는 게 보통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의료개혁안엔 의사 입장에선 또다른 독소 요소가 숨어 있다. 급여항목과 비급여항목의 혼합진료 금지가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병원으로선 적자를 보전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대형 병원들이 의사 대신 전공의를 쓰는 게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불사하고, 오만한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형 병원들이 전공의 대신 의사를 썼다간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선 진즉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차라리 국영화하라"

정부의 의료개혁안 대로라면 가뜩이나 부담이 큰 건강보험료의 상승이 장기적으로 불가피하다. 의료 수요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고, 수가를 조금이라도 올려주려면 역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의대 정원 감축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 악화우려 때문이다. 의사 수가 만약 두 배로 늘어나면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소비 또한 비례적으로 늘게 되고, 이에 따라 의료재정 지출 급증이 불가피하다.

필수의료나 지방에서 의사를 구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 수를 현 의대 정원의 65%에 달하는 2000명을 한꺼번에 늘리는 건 현재의 의료시스템을 망가뜨릴 위험성이 적지 않다. 필수의료 의사들을 늘릴 수 있는 방안에 우선 집중하고, 지역의 경우 이송 체계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의사들은 차라리 전국의 모든 병원을 국영화하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의사가 지금처럼 땀을 흘리려 할 것인가. 의료서비스의 질이 형편 없어지고, 국가 전체의 재정부담은 커질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해법은 보건복지부 관료의 책상머리에서 나온 실책이다. 지금이라도 단번에 2000명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일본처럼 단계적으로 늘리는 현실적인 방안을 갖고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서로가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선전·선동도 멈춰야 한다. 세상 일이란 흑과 백, 선과 악으로 단칼에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부 정책이라도 수용 가능성과 부작용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법이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정치적 목적이 적지 않은 야당의 지방의대와 공공병원 신설 요구에 대한 정부와 여당 차원의 대응 카드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과학이 아니라 흔들리기 쉬운 여론만을 등에 업은 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건 포퓰리즘 정부와 다를 게 없다. 의료개혁보다 훨씬 더 시급한 연금개혁은 아직까지 시동도 걸지 않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과도한한 정책을 정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의료대란 사태가 장기화돼 의료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현 의료체제 전면 개편 후유증으로 건강보험 부담이 더 늘어난다면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를 계속 지지할까? 이런 맥락에서 전 국민을 '의료 대란'으로 몰아넣은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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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기사 중에서 꽤 깊이 들어간 기사입니다. 상당히 기니까 일반인들이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길면 안 읽는다는 댓글이 태연하게 달릴 정도의 민도를 가진 사람이 꽤 되니까요. 그런 점이 아쉽습니다.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내용이 있는 기사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읽어야 시민이죠.

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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