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언제부터 마셨는지는 조금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것은 대학교 때부터였습니다. 시험 기간에는 아무래도 잠을 덜 자야 한다고 보통 믿고 있고, 이 때 커피가 유용한 편입니다. 저에게는 잠을 쫓는다는 점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어쩌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만들어서 잠을 쫓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요즘도 커피를 마시면 잠이 쏟아지곤 합니다.
이 때에는 자판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니 브랜드는 모릅니다. 통칭해서 자판기 커피라고 부르는 것들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때입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일반 커피랑 고급커피로 구분되긴 했지만 차이는 모르겠더군요.
전공의 때에 본격적으로 커피에 대해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1년차가 의국원들의 커피를 타 주는 게 관례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남존여비가 아직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시절이라 1년차가 2년차 이상 및 스탭들에게 커피를 모두 타 드려야 했었지만 1년차는 둘 다 남자이고, 2년차와 3년차는 모두 여자였기 때문에, 레지던트들은 각자가 알아서 타 먹고, 스탭들에게만 타 드려라 하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실제로는 그 지시에 상관없이 탈 때 한꺼번에 타는 게 더 효율적이니 상급 연차 레지던트들에게도 타 드렸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취향이 조금씩 다르니까 점차 본인이 타서 먹는 것으로 바뀌더군요. 스탭들은 다방 커피 및 자판기 커피에 익숙한 분들이라서 아무나 어떻게든 타서 드리면 그냥 마시는 분들이었고요. 아, 당시에 말이지요.
저도 2년차 때부터는 1년차가 타서 주겠다는 걸 굳이 만류하고 제가 스스로 타서 먹었습니다. 결국 그 이후에는 레지던트들은 각자가 자기 것을 타서 먹는 게 관례가 되었습니다.
준비를 해야 하니 물건을 사 오는 것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때까지는 <맥스웰 화인>을 먹었었는데, 어떤 분이 '야, 요새 <맥심>이라는 게 나왔다는 데 한번 먹어 보자.' 해서 맥심을 사왔습니다. 둘을 비교하면 꽤 비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이 더 좋다고 해서 그후 맥심이 기본 커피 종류가 되었습니다.
2년쯤 지났을 때에는 의국 경제사정이 좋아져서(1년차 땐 한 달에 4만 원인가로 커피나 손님 접대용 마실 것 외에 의국에서 산 책값, 복사비, 사진 인화비, 우편물 발송비를 모두 감당해야 해서 책값은 1.5만원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외판원들에게 상당히 미안했었는데, 의국장이 되면서 건의를 했더니 책값은 스탭 의국비에서 지원해 주신다고 해서 형편이 피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요구대로 화인, 맥심, 테이스터스 초이스, 그리고 각각의 모카(전부는 아닐지라도) 등을 사 놓고 비교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맥심이 제일 좋았습니다. 녹차랑 홍차 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건 곁가지입니다.
전문의 시험을 마친 다음에 군에 갔고 이 때에는 그냥 마실 수 있으면 다행이었으므로 고를 여지가 별로 없었죠. 군의관 2년차 때 대대에서 병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몇몇 기독 장교들의 아침 모임이 있었는데 비기독교인들도 와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주최자가 커피 메이커를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다들 모임에 와서 모임에 참석하는 건 아니고 옆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것이지요. 기독 장교 모임이 끝나면 다함께 오붓한 담소시간이 되었던 것 같네요.
병원이라는 조직은 근무시간이 곧바로 진료시간이 되는 게 아니라서 이런 사치가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이 때에는 원두커피를 마셨습니다. 누군가가 원두를 사서 공급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원두커피를 즐기는 몇 사람이 돌아가면서 사는 듯했습니다. 저야 원두 커피를 처음 보는 사람이니 뭐가 뭔지 몰랐던 시절입니다. 설탕도 투박하게 생긴 돌설탕이라고 하나요, 뭐 그런 것이었고, 비상용으로 각설탕도 있었습니다.
대충 보니 몇 사람은 잘사는 사람이고 몇은 저처럼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격이 다르더군요.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사는 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원두 커피를 매일 마시다시피 했었는데, 맥심보다 월등히 낫다라고 말하긴 곤란하더군요. 조금 나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필터(찌꺼기 포함)도 제때 버려야 하고, 원두도 그때그때 갈아야 하는 게 여간 귀찮아 보이지 않더군요.
군을 제대하고 모교로 돌아가니 지방의 병원으로 가라 하였습니다. 당시엔 3년 만에 본격적으로 다시 일을 하는 것이여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원에서 먹고 밤에 퇴근을 하였습니다. 빌린 집은 말 그대로 잠을 자기 위한 곳이었고요. 혼자서 먹자고 커피를 사긴 뭐해서 옆방의 전문의를 꼬드겼는데 취향이 달라서 실패했습니다. 아마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먹었던 것 같네요, 그 사람은.
다음해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또 그 다음해에 또 다른 병원으로 갔습니다. 이 세 번째 병원은 8년 반 동안 있었으니 자리를 잡은 셈이었는데, 커피에 대한 선호는 바뀌지 않았죠.
40대가 된 다음 모교를 떠나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원래 있던 친구(전문의 동기였습니다.)가 사 놓은 건 커피믹스. 자리도 좁고 해서 학교에선 맥심을, 병원에선 있던 믹스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맛이 좀 달라지는 것 같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라면에 대한 것도 달라졌습니다. 이것은 다른 글에서 쓰겠습니다.
맥심이 점차 맛이 없어져서 다시 이것 저것을 사서 돌아가며 먹어 보았습니다. 뜻밖에도 맥스웰 화인이 제일 좋더군요. 당시엔 고급 커피들이 나오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20년 만에 커피는 맥스웰 화인으로 회귀하였습니다.
* * * *
한편, 비율을 어떻게 하여 먹는 게 좋은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요. 남이 주는 것을 주로 먹는 사람들(다르게 말하면 누가 타 주거나 아니면 사서 먹는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만 저처럼 직접 타먹으면 이 비율이 중요합니다.
레지던트 때 많이 타다 보니 (1년이면 300일을 근무하던 시절이니까 1년차 때만 해도 대략 3천 잔은 탔을 겁니다.) 나름대로 비율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윗년차에게 전수받기로는 커피-설탕-크림을 2-2-2로 받았습니다만, 제가 조금씩 변경하였습니다.
제가 도달한 비율은 2-3-4였습니다. 나중에 작년보다 지금이 낫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요. 10여 년이 지난 다음에 어떤 기사에서 평균적인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입맛의 비율을 연구한 결과를 보았는데, 2-3-3.6이었습니다.
블라인드 처리하여 맛을 보게 하면 그리 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블라인드 처리로 선호도가 달라지는 건 펩시가 코카를 상대로 하여 시도하여 증명한 바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뜻밖에도 완고하여 혀는 인정하지만 머리는 인정하지 않지요. 주변인 몇에게 이야기 해 주었지만 코웃음만 치더군요. 뭐, 자기의 취향대로 사는 것이니 왈가왈부할 대상은 아닙니다.
이 비율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조금씩 변하였습니다. 오랫동안 2-3-4로 먹다가 입맛이 변하여 조금씩 변화를 주어 보았습니다. 최근에 제가 마시는 비율은 2-2-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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