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학은 이류 대학을 지향해야 한다


해방 이후 국립대학이 각 도에 하나씩 생겼다. 이유는 고등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기 위함이다. 덧붙여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저등록금 정책도 병행했다. 국립대 총장의 위상은 한 때 차관급이었다고 한다(서울대는 장관급). 문제는 도지사가 차관급이 못 된다는 것. 이게 중앙정부만 있었을 때에는 문제가 안되었지만 지방분권이다 뭐다 해서 선거로 뽑는 시절이 되니 좌석 문제가 불거진다. 그래서 총장의 위상이 하나 내려갔다고 한다. 차관보 급이라던가? 도지사는 차관급이라고 하고.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역시 '뭐뭐라 하더라'는 부정확하군요. 일반국립대의 총장은 아직도 차관급인데 민선 도지사보다는 아래로 본답니다. 뭐 다 --에 준한다니까 정식으로 차관이란 뜻이 아닌 것이죠.)


그리고 국립대의 총장은 직선제가 아니라 간선제가 되면서 도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총장 추천위원회에 들어간다. 지역 인사들도 몇 들어가는 게 관행이다 보니 자연스레 각 도의 국립대학은 각 도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제 국립대는 도에서 경비를 덜 들이면서도 자랑할 수 있는 기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래서 목표가 글로발화 같은 허망한 것으로 바뀐다. 왜 허망하냐고?


고등교육이라는 관점으로 돌아가 보자.


교육에도 수요라는 게 있다. 그래서 대학이라는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지만 우리가 수용했으니 그게 그거다. 당연히 대학간에 차등이 있고, 이에 따라 보통 학교(이른바 이류 대학)와 구별되는 일류 대학도 있고, 찌질하다고 생각하는 삼류 대학도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중앙집권이 아니라 지방분권이 오랫동안 시행되어온 나라이다. 즉 지방 정부가 엄연한 하나의 정부이다. 그 정부가 세운 대학(지방국공립대학)이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되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우리는 국립대는 뒤늦게 추가된 게 현실. 게다가 일본보다는 나라 크기가 작고, 지방은 그냥 지방일 뿐이었다. 부산이나 광주가 아무리 큰소리를 쳐봐야 서울에서 보면 그냥 지방의 목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더구나 서울에는 서울대라는 국립대가 있긴 있는데, 이게 다른 국립대완 달리 별도의 법령으로 세워진 것이다. 즉, 국립대에도 위상차가 생긴다.


과거엔 이러한 점이 당연했지만 지방자치제가 된 다음에는 달라졌다. 돈을 국가에서 부담하는, 그러나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을 내버려 둘 정치인은 없다. 그래서 지방 국립대의 일류화가 지방국립대의 지상목표쯤이 되었다.


사실 우리 나라 정도라면 국립대는 이류를 지향해야 한다. 등록금은 더 낮추고. 즉 <지방에서 원하는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 최소한의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한도에서 지원을 하면 되는 것이다. 좀더 차원 높은 교육은 일부 사립대를 통해 누리면 된다. 아니면 일류를 위해 떼어낸 서울대로 가든지.


전체 국립대 예산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서울대가 덩치에 비해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이를 더 늘려서 서울대의 지나치게 높은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 그리고 지방의 수재중에서 돈이 없어 지방 국립대를 갔다는 말이 없어지게 해야 한다. 또한 서울대 교수직을 지방 국립대 교수 전체에게 개방하여 지원자 간의 경쟁을 통해 임명하면 더욱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3년 내지 5년 안에 반드시 재임명을 하는 것이다. 사립대 교수들에게도 지원 자격을 주면 더 좋겠고.


즉 서울대에 더 많은 지원을 하되, 연구와 성과가 미흡한 교수는 내보내는 걸 강화하고, 학생도 공부하지 않으면 내보내야 한다. 직원들도 서비스를 강조하고 미흡하면 다른 국립대로 전출시킨다. 전체 국립대가 몸통이고, 서울대는 꽃이 되는 것이다.


왜 이래야 하느냐면, 일류가 있으려면 이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에서 모두가 일류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일류라면, 그건 인간 사회가 아니다. 이류를 유지하는데 100이 든다면 일류를 만들려면 사실 1000은 필요하다. 조금만 더 잘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사람은 들어가는 노력을 폄하하는 사람이거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니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지방 국립대(10여 개) 말고 특수 (목적) 국립대들(40여 개)이 있다고 일전의 국회 자료에서 보았다. 지방 국립대가 그냥 분교 수준(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경북대학교는 국립대학교 대구 캠퍼스로)이 된다면 적지 않은 수의 특수 국립대를 흡수할 수 있다. 기관의 수가 줄어들면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인력/비용이 줄어드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비전문가가 전횡하여 망칠 걸 우려할 수도 있겠다. 특별한 분야는 전문위원회가 주요 결정을 내리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교육 위원회가 교육대랑 사범대를 담당하고, 의학 위원회가 의대와 치대, 간호대를 담당하면 된다. 각 위원회 구성은 법을 만들 때 미리 정해두면 된다.


적지 않은 기득권자들이 반대할 것이고,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정책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이러한 생각은 그냥 공상에 그칠 것 같다. 프랑스가 바칼로레아를 도입한 게 나폴레옹 때라고 한다. 역시 인간사의 주요 변환점에는 독재자가 관여한 게 많다.


한 문장 요약 : 모든 국립대는 이류를 지향해야 하고, 예외적으로 하나의 대학(서울대)은 일류 지향을 위해 남기고 좀더 지원해 줘야 한다.


(옛날에 써뒀던 글인데, 아직도 소신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는 최근에 얻은 지식으로 고쳤습니다. 당시엔 평어로 쓰는 게 보통이었나 봅니다.)

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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