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도가 도입된 지 좀 되었습니다. 1등급을 받으려는 건 평가를 받는 기관들의 기본적인 욕망이니까, 결론적으로는 진료의 수준 향상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세부 사항에 들어가면 조금 삐꺽거리게 됩니다.


저야 병리의사니까 다른 분야는 제가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니 제쳐버리겠습니다.


몇 가지 종양(사실 이러한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은 종양 전반이 아니라 악성 종양, 특히 암종이 대상입니다.)을 다루다 보면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항목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몇 가지 암종에선 유의했지만 특정 암종에서는 유의하지 않아서 언급하지 않게 되는 항목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항목에 대해 정통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분야는 눈감고도(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실제로 눈을 감고서야 어떻게 진단을 붙이겠습니까?) 진단을 붙이는 분야도 있지만 어떤 것은 세부 사항에 대한 정의가 조금 달라서 자주 참고 자료를 들춰야 하는 것도 있고, 또 최신 정보 확인차 열람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어디까지 정확히 아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제목과 같은 분야에도 병리의사가 하나 또는 그 이상이 위촉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동의하면 항목에 들어가는 것일 테고요. 어쩌면 반대해도 다른 과 사람들이 주장해서 넣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간사회에서야 흔히 있을 수 있는 것이죠. 또 그 병리의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할지라도 잘못 알거나, 상식적인 대답을 했는데 사실은 불필요한 것이었다거나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또는 인간의 질병)에 대한 것 중 100%확실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를 제외하면 없습니다.


대장암의 림프절 수에 대한 항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WHO Classification에도 이 수치가 명시되어 있으니 꽤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리 찾아도 이 수치를 채울 수 없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는 12인데, 어떤 환자는 시간을 많이 투여하여 찾아도 이 12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병리의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9개 중에서 전이가 0개라고 보고하면, 이 적절성 평가에선 감점입니다.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 데 대한 평가가 감점이라는 말뿐입니다. 아니, 림프절을 만들어 내야 하나요? 이런 가정을 해봅시다. 누군가가 원래는 9개인데 12개라고 결과 보고서에 적었다고 합시다. 대외적으로는 우수한 기관으로 평가됩니다만 진실은 뭡니까? 거짓말 하는 기관이지요.


아무리 찾아도 12개 미만인 사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가를 하기 전의 자료를 가지고, 12개 미만인 경우가 있으면 감점이라고 할 게 아니라 1년간 몇 % 이상이 12개 미만이면 감점이라고 해야 제대로 된 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많을 수록 점수를 더 주어도 안됩니다.


얼마 전에 우리 병원에서 고위층이 우리 과에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12개 미만인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없는 림프절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거짓말을 하라는 말과 다를 게 없습니다. 만약 이 압력에 굴복하여 12개 미만인 경우 모두 12개라고 보고한다고 합시다. 누가 잘못한 것입니까?


저 기준을 마련한 사람 - 잘못했습니다. %로 규정해야 할 것을 빼먹었으니 잘못입니다. 전국에 영향을 미칠 만한 기준은 잘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거든요.

병원 당국 - 잘못입니다. 성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까요?

병리의사 - 잘못입니다. 외압에 굴복해서 거짓 결과를 입력했으니까요.


만약 처벌을 한다면 누구를 해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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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실제 자료를 보면 2011년에 12개 이상인 경우가 82.2%였는데, 매년 증가하여 88.5, 90.9, 93.5, 95%가 되었습니다.(자료출처-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분석을 해봅시다. 82%가 95%로 변했습니다. 4년 만에.


경우의 수를 따져 봅시다.

1. 환자들의 림프절이 증가하였다.

2. 병리의사들이 림프절을 더 많이 찾아내었다.

3. 어떤 야료가 있다.


1은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죠? 예, 기준을 만들었다고, 환자가 그 기준에 맞춰 몸을 변화시켰을 리가 없으니 제외해야 합니다.

2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전에 대충 찾던 사람(사람이니까 없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입니다.)들이 12개를 목표로 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저는 항상 최선을 다했었다고 자부합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해당이 없습니다만 누군가에게는 해당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3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위에서 쪼아대는 경우, 슬쩍 바꿔치기를 하면 피할 수 있는 걸 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인가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료만 가지고 추론한다면, 제 생각엔 90-92% 내외가 정상 수치일 듯싶습니다. 2015년의 95%는 전국의 병원을 전수 조사한다면 일부는 거짓으로 나올 것입니다. 게다가 수치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거든요. 하나는 결과보고서의 수치만 바꾸는 것, 또 하나는 하나를 둘로 쪼개어 넣는 방법. 두 번째 방법은 그렇게 한 병리의사 외에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결과 변조를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난 거짓을 말할 수 없어, 라고 거부하면, 내부의 적이 될 것입니다. 너 때문에 우리 병원의 점수가 깍이고 있어! 한 조직 내에서 견디는 게 어렵지요. 저도 압력이 들어온다면, 욕을 먹으면서 버티다가 1. 사직한다, 2. 자료를 조작한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2번을 선택한다면 완전범죄에 가까운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할 것이고, 당연히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저도 그 자료의 진실성 여부를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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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훔친 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고삐를 잡고 있는 손을 처벌해야 합니까, 아니면 사람 자체를 처벌해야 합니까? 당연히 사람 자체를 처벌해야 합니다. 위의 세 부류의 사람 중 기준을 잘못 만든 사람을 먼저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래 두 부류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됩니다. 이 글의 목적은 처벌하라는 게 아니라 기준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잘못된 기준으로는 평가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분이 이 글을 보고, 거짓으로 진단하는 병원들이 있대, 라고 말하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이 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가능성 자체만을 언급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선 모든 것이 가능성이 있거든요. 죽지 않는다는 주장을 제외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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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그 기준이 살아 있고, 또 압력이 거세어진다면 저 <%>는 점차 증가해서 언젠간 99 내지 100%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웃기는 결과입니다만,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인간세상에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높은 수치가 진짜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정말로 좋은 것입니다. 그 적절한 범위는 사심 없는 사람이 잘 알아본 뒤 정하는 게 순리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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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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