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동

기타/옛날에 2016. 11. 11. 09:00

서울에 올라와서 부모님이 자리잡은 곳이 이문동입니다. 이문동은 67년인가에 서울로 편입된 곳으로 기억합니다. 따라서 그 이후에 서울로 전입한 서민들이 많은 동네입니다. 처음엔 이문국민학교 서쪽에 집을 구했었는데, 5학년 때 동쪽으로 이사했습니다. 동쪽은 지금 그 일대가 모두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더군요. 옛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지요.


이문국민학교를 5회인가 7회로 졸업했을 것입니다. 아, 이젠 이런 것도 가물거리네요. 하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늙었다는 증거라고 하니까요. 사실 확인을 위해 홈페이지를 방문했더니 최근에 홈페이지를 새단장했다면서 연혁이 안 보이네요. 자료 날려 먹는 게 새단장인가 봅니다. 학교 현황도 로그인한 다음 사용하라네요. 공개 정보일 텐데 뭔 로그인? 2012년 이전 자료는 조회 가능한 게시판에서 안 보입니다. 1-2년 전에는 연혁을 본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고학년 때 저학년은 2부제를 해서 우리의 체육 시간을 방해했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50미터 달리기를 하던 중 갑자기 1학년인가가 우루루 집으로 간다며 계단을 내려오는 바람에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 학년이 18반까지 꽉 채우고 있었고, 한 반에 80명씩 있었던 기억도 납니다. 담임 선생님이 생일 순으로 번호를 정했기 때문에 제가 74번이었던 때가 아마 5학년일 때였던 것 같은데, 81번인가 82번이 존재했었습니다. 6-7명이 저보다 나이가 어린 건 아니고 몇 명(4-5명?)은 전입생이었습니다. 6학년 때인가 어느 날 학교를 빙 돌다가 본관의 중앙 현관에 붙어 있는 자료 중 연혁을 보니 한때 학생수가 만 명이 넘었다고 되어 있었고, 석관국민학교에 학생을 3천인가 4천을 떼주었다는 글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석관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71년 12월에 개교했다고 되어 있네요. 제가 4학년 때인데 학생들이 분가해 나간 기억이 없었습니다. 하긴 3천이면 각 학년에 500명일 것이고, 각 반에선 20여 명일 테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고,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아무튼 38학급으로 시작했다고 하니 대략 3천 명쯤 되겠네요. 그런데 더 오래된, 그리고 지리적으로 이웃한 장위국민학교에서도 학생을 받았을 테니 전부가 이문국민학교에서 간 건 아니겠지요. 이런 자료들은 아무도 갖고 있지 않나 봅니다. 장위초등학교도 홈페이지 기록은 대략 2005년부터 나타나는 편이고, 석관초등학교도 2003년부터 기록이 자세해집니다.


이문동 하면 옛날엔 석탄공장이 밀집한 지역이었습니다. 뭐 연탄 공장이 한창 때는 20여 개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문역은 사람이 내리는 곳이 아니라 석탄을 내리는 곳이였다고 하니 말을 다했지요. 사람은 신이문역이 생긴 다음에야 제 대접을 받은 모양입니다. 국민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 기차를 탄 적이 있었는데 청량리역까지 가서 이용했었습니다. 중량천 쪽으로 산책을 가면 (어린애가 무슨 산책입니까? 다른 애들과 함께 놀러 간 것이지요.) 작은 동산만큼 쌓인 석탄 더미를 무수히 보았었죠.


바람이 이문역에서 동네 쪽으로 불면 널었던 빨래를 모두 거둬들이느라 부산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깜빡 잊으면 석탄 가루가 잔뜩 앉은 걸 보아야 하고, 다시 빨 필요가 있기도 했습니다. 자주는 아닌 듯합니다. 가끔 속상해 하시는 어머니의 기억이 있는데 항상 그랬다면 별로 속상해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30-40량씩 이어진 기차 행열을 보기도 했었죠. 요즘은 기관차를 두 개씩 붙이고도 30량 이상은 편성하지 않는 듯하더군요. 태릉으로 두어 번 소풍을 갔었기에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걸어서 갔다가 다시 오후 늦게 돌아왔던 기억도 납니다. 시멘트로 만든 갈수기에만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비슷한 것을 건너다니기도 했었죠. 아마 요즘이라면 안전상의 이유로 못 다니게 할 것 같네요.


고철을 학교에서 수집했던 시기라서 동생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잔뜩 모아서 제출했던 기억도 납니다. 한 번 더 수집해서 모아뒀더니 그 다음엔 내라는 말이 없어서 비어 있던 개집에 보관하다가 어머니께서 강냉이로 바꿔 드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석관동에 사시던 (아직도 사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못 뵌 지 한참 되었네요.) 이모께서 어느 날 강아지(스피츠라고 알고 있습니다.)를 하나 가지고 오셔서 키웠는데, 새끼를 네 마린가 낳았습니다. 뭐 강아지야 주변으로 다 나눠지는 게 운명이죠. 배에 반점이 생긴 녀석은 죽었고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군 복무할 때 수의사 출신인 의정장교의 책꽂이를 들추다 보니 그런 병이 있더군요. 한 마리는 나뒀었는데 수컷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놈이 커서 제 어미랑 붙으려고 해서 어머니가 어미를 내쫓았다고 하시더군요. 아마도 발정기 때 우는 게 꼴보기 싫으셨겠지요.


그리고 그 녀석도 몇 년 뒤엔 개장수에게 팔려 없어졌습니다. 스피츠가 털이 길어서 봄만 되면 겨울털이 빠져서 온 마당이 개털 투성이거든요. 게다가 밥이며 목욕이며 다 어머니 차지니 짜증이 나셨겠지요. 2년 전 개를 하나 구하게 되어서 마당에서 키울까 했었는데, 우연히 들으신 어머니께서 기르지 말라고 원격 지휘를 하셔서 남에게 줘야 했습니다. 애들에게는 할머니께서 금지하셔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요. 한동안 서운해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요. 이 애들이 나중에 이런 기억을 할까요?


중3 때 묵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문동과는 작별을 하게 됩니다. 아니, 이문동교회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다녔기에 3년 더 인연이 이어지는군요. 꽤 오래 살은 것 같은데 지금 계산해 보니 얼마 안되네요. 69년-75년. 6년 남짓되는 기간이지만 당시엔 전 인생의 절반 가까운 시기였고(기억의 범위로 좁히면 60%), 이제는 1/9이니까 상대적 가치가 다른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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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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